글연성

[닌타마 / 케마이사] 불운의 의미

◆Pix 2016. 2. 5. 22:06



다 내 잘못이야.

 

 

 

 [케마이사] 불운의 의미

 - 이사쿠 이야기



 

 

 

 

 

 

아직도 기억나.

나랑 첫 '같은 방'이었던 그 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으로부터 꼭 6년 전, 우린 이 인술학원에 입학등록서를 냈고ㅡ 처음으로,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났어. 1학년 하반! 여러분 안녕! 드디어 닌자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그것도 함께할 친구들이 생긴다는 설렘은 어린 내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지. 게다가 우리 학교는 기숙사 제도라는 거야! 첫 방 배정을 받았을 때 많이많이 설렜어. 과연 나와 같은 방을 쓰게 될 아이는 누구일까? 하늘색 닌타마 교복을 입은 채 열어젖힌 문 안 방은 아늑했고 뒤따라 들어온 나의 첫 동급생 ㅡ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ㅡ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어. 안녕? 이사쿠! 아까 다 같이 소개할 때 들었어. 젠포우지 이사쿠 맞지?

 

 

 

이사쿠, 내 이름이 처음 불렸을 때 가슴에 퍼지던 그 따뜻한 감촉. 난 그 감촉이 아직도 기억나.

 

 

교실에 앉아 책을 펴 공부하고. 표적에 수리검을 던져 맞히고. 우라산에 올라갔다가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고.. 평화로운 나날이 늘 지속될 것만 같았어. 난 고작 열 살이었고, 선생님들은 엄청나게 커다랗고 든든한 사람들로 느껴졌었어.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는 더 그랬다는 뜻이야. 생각해 보니 그땐 도이 선생님이 안 계셨구나. 도이 선생님이 안 계신 학교라니 조금 이상하긴 하다. 어쨌든.

 

 

 

처음 같은 방을 쓰는 아이와는 더 많이 친해지는 게 당연하잖아. 난 그 아이와 꽤 많이 가까워졌어. 지금 란타로군, 키리마루군, 신베군이 친해진 것처럼.. 넌 그땐 나랑 꽤 먼 방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래서 그땐 너랑 내가 그렇게 많이 친하지 않았나 보다. 아아, 삐지지 마. 지금 안 그러면 된 거지 뭐. 하여간 난 그 아이랑 매일같이 밥을 함께 먹었고 함께 놀았고 함께 수련했고... 아하, 생각난다. 몬지로랑 센조는 그 때부터 같은 방이었는데, 그 땐 몬지로가 거의 지금 1학년 로반 애들 수준으로 말이 없었어. 믿겨지니? 하하하. 지금 성격은 거의 센조랑 싸우면서 만들어진 거라니까. 하긴 그땐 네가 나보다 더 몬지로랑 친했겠다.

 

 

 

어쨌거나 그런 날들이 지속됐어. 첫 위원회를 뽑았을 때 글쎄 난 네가 알다시피 보건위원회에 당첨! 됐고, 하반 아이들은 모두 "이사쿠 불운해~" 하고 놀렸었지. 그때 불운이 뭐야?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나. 운이 없다는 뜻이랄까, 애들은 장난식으로 가르쳐 주었고 내 같은 방 짝꿍 아이는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나를 토닥여 줬어. 그런 건 다 미신일 뿐이라고... "네가 정말 불운하면 그렇게 실기수업을 잘 따라가겠어? 걱정하지 마, 이사쿠." 하하.. 그래. 그땐 그런 줄 알았지.

 

그런 날들이 지속됐을 때 말야. 그래. 그 일이 일어난 거야. 너도 기억하고 있을 거야. 우린 겨우 열 살이었으니까. 제발, 그 애 이름을 기억하려 하지 마. 날 괴롭히지 마.

 

 

 

 

처음으로 눈앞에서 보게 된 친구의 죽음.

 

 

 

내 앞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아이는.. 내 같은 방 아이였어.

내게 날아오는 총알을 막아 주려다 자기가 맞은 거야.

그게 말이 돼? 우린 고작 열 살이었다고.

죽음을 이해하기엔 난 너무 어렸고,

비어 있는 방에서 혼자 있기엔 난 너무 여렸어.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네가 알까?

 

 

나 때문이야.

내 불운이 옮겼던 거야.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불운... 그 불운이 한 번도 날 죽인 적은 없었단 말야.

그런데 어떻게 나도 아닌 내 옆 사람을 죽여?

그건 말이 안 되잖아. 그렇잖아.

 

그땐 그냥 넘길 수 있었어.

하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빈 방에 앉아 있노라면

너무 무서워져서,

쫓기듯이 도서실에 가보면 늘 쵸지가 있었거든. 꼭 기다린 것처럼.

그럼 내게 말을 걸어주는 쵸지 옆에 앉아서 잠깐 무서움을 잊다가

쵸지네 방에 가서 함께 잠을 청하곤 했지.

그나마 그게 나에게 위로가 됐어.

왜 내 방에 올 생각 안 했냐고 묻진 마.

그땐 너랑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았어.

삐지지 말구.

 

 

 

 

 

그리고 우린 2학년이 됐어.

 

그 일이 점차 학교에서 잊혀질 무렵 우린 방 편성을 다시 했고,

난 다시 새로운 방 친구를 만났지.

그때의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친해져 있었으니까

누가 한 방이 되든 크게 상관 없었지.

 

 

그리고 또 평화로운 날들이 계속되다가...

 

 

 

 

 

또 그 일이 일어난 거야.

 

악몽의 반복.

 

낭자한 선혈과

 

또다시 비어버린 방.

 

 

 

 

나 때문이야.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남들은 한 번 겪기도 힘든 일이 나한테 2번이나 일어날 리가 없어.

 

 

 

 

정말 내가 그렇게 불운한 거야?

내가 그렇게까지 운이 없을 수 있는 거야?

 

 

기억나?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3학년 때도.

4학년 때도.

5학년 때도.

 

 

똑같았어.

 

똑같은 일이 계속 일어났다고.

 

 

 

 

새로운 방 친구가 생겼고

 

그 아인 그 학년이 넘어가기 전에 죽었어.

 

 

 

나 때문이야.

안 그러면 어떻게 내 방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

 

이건 내가 불운하기 때문인 거야.

내 불운이 내 방에 있는 사람까지 불운하게 만드는 거야.

너무 불운해서, 너무너무 불운해져서...

죽어버릴 만큼.

 

 

 

 

 

물론 그 해에 죽은 사람이 내 방 친구만은 아니었어.

우린 많이... 죽으니까...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

이사쿠가 불운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왜 내 귀에는 들리는 것만 같았을까.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밤마다 같은 방이었던 친구들이 꿈에 나왔어.

 

 

그렇게 많이 죽었고

그만큼 많이 떠났고.

 

그렇게... 우리 둘만 남게 된 거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너와 내가.

 

 

 

 

 

너무 무서워.

 

 

 

 

대답해줘, 토메사부로.

 

넌 내 옆에서 살아 있을 수 있니?

 


 

 

 

 

 

 

왜 네 잘못이야?

 

 

 

[케마이사] 불운의 의미

 - 토메사부로 이야기



 

 

 

 

 

 

아직도 기억나.

그 아이의 시신을 앞에 둔 네 표정이 어땠는지.

 

지금으로부터 꼭 6년 전, 우린 이 인술학원에 입학등록서를 냈고ㅡ 처음으로,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났어. 1학년 하반! 여러분 안녕! 드디어 닌자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그것도 함께할 친구들이 생긴다는 설렘은 어린 내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지.... 가 문제가 아니라, 난 사실 싸움꾼들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지. 하하. 뭣도 모르는 허세로 똘똘 뭉친 열 살의 나는 내가 가진 힘을 꼭 시험해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그땐 네 얼굴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 닌자같지도 않게 생겨서는, 닌자같은 성격도 아닐 것 같다. 라는 게 널 처음 본 내 인상이었거든. 한번 슥 보고 걍 잊었지.

 

 

 

난 이래뵈도 살던 마을에선 힘깨나 쓰던 애라서 금세 하반 아이들과 차례로 힘겨루기를 하게 됐고, 역시나답게 난 탑을 먹었지. 글쎄 네가 기억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너와는 승부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사실 네가 싸움에 잘 응해주는 성격은 아니잖아. 그러다가 이반의 몬지로와 어쩌다 붙게 됐는데, 느낌이 오더라고. 아 이 자식은 내 필생의 승부사다. 반드시 이겨주고야 말겠다. 흐흐! 아, 논점은 이게 아니고. 미안해, 딴소리 해서.

 

 

위원회 뽑았을 때 말야? 아하, 그때 내가 뭘 뽑았는지는 잊어버렸어. 지금의 용구위원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넌 잊어버리지 않고 있어. 6년 연속 보건위원 당첨의 주인공을 잊어버릴 수가 있나. 그때 네가 보건위원에 혼자 뽑혔을 때, 주위 애들이 "이사쿠 불운해!" 하던 것 다 기억나. 그때 네 표정이, 풉, 정말 귀여웠거든. 이건 칭찬의 의미야. 제비 하나 뽑아들고 주위 반응에 당황해서 난감해하는 얼굴이라니! "불운하다는 건 그냥 운이 안 좋다는 거야." 그렇게 장난식으로 말해준 거, 나였잖아. 그런 것도 기억을 못해, 바보가.

 

...... 그 이후로 내가 너한테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넌 모르겠지? .... 그래 모르고 있네. 나하고 덜 친했네 어쨌네 그런 소리 하는 거 보면. 넌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내가 그날 이후로 너한테 다가가려고 얼마나 남모르게 애를 썼는데.... 너 선배님들 함정에 빠지는 거 구해준 게 누구냐? 도서실 갔다가 책 쏟아지는 데 책장 일으켜 세운 게 누구야? 기억해 봐. 니 옆에 항상 누가 있었는지. 하긴 넌 늘 네 방 친구와만 다녔었지. 어느 날 네가 혼자 우물가에서 양치질하다가 우물에 빠질 뻔했을 때 내가 구해줬잖아. 그때 "고마워, 토메사부로" 라고 말하던 네가 난 기억이 나는데 넌 기억을 못한다고? 에휴, 딸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더니... 아니 네가 내 딸자식이란 건 아니고. 넌 딸이 아니라........음...... 모, 몰라. 따라다닌 거 아니냐고? 그, 그런 적은 없어! 솔직히 너 돌봐주는(?) 시간보다 몬지로랑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착각하지 마.

 

 

 

 

아, 아무튼. 어쨌거나 네 말대로 그런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다가, 기억나. 우리의 동맹 성과 전쟁을 하던 그 성에 잠입해서.. 임무를 수행하려다가. 너를 향한 총구를 봤어. 내가 뛰어들기도 전에 네 그 같은 방 친구가 뛰어들더라. 탕! 하는 소리가 났고 걔는 엎어졌지. 나도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어. 네 같은 방 친구이기 이전에 같은 하반 학생이었잖아. 지금 1학년 하반 애들이 당장 헤이다유나 단조가 죽는 걸 눈앞에서 본다고 생각해 봐. 산지로나 토라와카 뿐만이 아니라 전체가 멘붕할 거 아냐. 똑같은 이치지.

 

 

 

그런데 네 얼굴은 정말 장난 아니었어.

 

저거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지.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내 머릿속은 그런 생각들로 가득했어.

 

우린 고작 열 살이었고, 그 충격을 혼자 감당하기에 모두 약했어.

넌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난 황급히 달려가 너를 안아들었어.

 

 

 

이사쿠가 정신을 잃었어. 빨리 물수건 좀 가져와줘!

 

 

 

 

그리고 그 총을 쏜 병사는 선생님들이 죽였지.

 

인술학원의 법칙, 교사와 학생은 웬만해선 다른 닌자나 사무라이를 죽이지 않지만,

단 하나의 예외. 우리 학생을 죽였을 경우, 논외 없이 사살.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1학년 때부터였을 거란 생각은 미처 못 했어.

 

친구를 잃었기에 당연히 상심이 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정말로 네가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었을 줄은....

 

 

그때로 돌아가서 널 안아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넌 내 방에 올 생각도 못 했겠지.

넌 그때 내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랐을 테니까...

쵸지가 있어줘서 다행이다.

 

 

 

 

 

 

 

그렇게 지나갔던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까지.

 

 

 

 

많은 아이들이 죽었고

 

많은 아이들이 떠났어.

 

 

 

너와 같은 방이었던 아이들이 모두,

1학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는 것

나는 기억하고 있어.

어떻게 기억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때마다 너는 그 앞에서 정신을 잃었고

그때마다 너를 안아든 것이 나였는데....

 

 

 

 

 

 

단 한 번도 그게 네 탓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남들은 한 번 겪기도 힘든 일을 다섯 번이나 겪은 너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외람된다는 생각 안 해?

몬지로도, 쵸지도, 코헤이타도, 센조도 같은 생각일 거야.

 

 

 

응. 기억나.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똑같았어.

 

똑같은 일이 계속 일어났지.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니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건 우리 둘이었더군.

 

 

 

 

 

하지만 그건 네 방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야.

이 인술학원에서 죽어간 아이만....

 

제발, 우연이라고 생각해줘.

네가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우연이 되는 거야.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마, 제발, 이사쿠.

 

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책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어.

그랬으니까 우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내가 네 감정을 아는 만큼

내 감정도 한 번만 들어 주지 않을래?

오, 제발. 울지 말고.

 

 

 

내가 한 생각은 오직 하나였어.

 

 

 

 

내가 너와 같은 방이 되어준다면

그 끔찍한 연쇄작용을 끊어줄 수 있을 텐데.

난 결코 죽지 않고 살아서,

그 다음 해에도, 그 다다음 해에도....

같은 방에서 너를 반겨줄 수 있을 텐데....

 

 

 

 

다행히도 6학년이 되던 날 너와 한 방에 들어갔을 때

드디어 너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어.

 

네 옆에서 끝까지 살아 있어 줄게.

 

 

 

네 옆에서 끝까지 살아 있어 줄 수 있는 내가,

가장 마지막이 된 건 왜였을까.

 

귀찮게 말야. 안 그래?

 

 


  

 

 

 

 

 

 

 

 

 

 

 

 

 

 

 

 

 

 

 

 

 

 

 

 

 

 

 

 

 

 

 

 

 

 

 

 

 

 

 

 

 

 

 

 

 

 

 

 

 

 

 

 

 

 

 

 

 

?

 

 

 

 

 

 한  

 

 

 

 

 

 

살았다 싶었던 맨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의 마지막에

 

 

 

 

 

 

 

 

 

 

 

 

 

 

 

 

 

 

 

 

 

 

 

 

 

 

 

 

 

 

 

 

 

 

 

 

"토메사부로! 토메사부로! 내 목소리 들려? 제발, 제발, 토메사부로! 토메사부로..."

 

 

 

 

 

 

 

 

 

 

 

 

 

 

 

.

 

 

 

 

 

정말이지, 불운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