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x 하이큐] Extraordinary vol.1
- 다이아몬드 에이스 x 하이큐!! 크로스오버
- 해리포터 au
유우키 테츠야 x 이사시키 준 x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사와무라 다이치 x 스가와라 코우시 x 아즈마네 아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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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 조작의 시대 (1)
“그만! 배심원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신경질적으로 의사봉을 두드리는 소리가 원형의 심문장에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찬물을 끼얹은 듯 잦아들었다. 커다랗고 무거운 방 한가운데 놓인 쇠사슬이 철커덕거리는 나무의자, 그리고 사납게 생긴 남자 하나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만하리만치 높은 재판장의 자리를 쏘듯 올려다보았다.
“피고는 지금부터 묻는 말에 진실하게 대답하도록.”
재판장은 의사봉을 내려놓고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두꺼운 종이 뭉치를 향해 눈을 돌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자의 남자에게로 쏟아졌다.
“피고 이사시키 준. 다이애건 앨리 33-8번지에서 마법생물 판매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상인. 범죄기록은 없으며 기소된 것도 이번이 처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폴리주스 마법약이나 변신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본인이 맞는가?”
“맞습니다.”
몹시 기분 나쁜 표정을 한 남자가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팔걸이에 그의 팔을 묶어놓고 있는 쇠사슬이 위협적으로 철컹 하는 소리를 냈다.
“피고는 이번 재판에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다. 맞는가?”
“맞습니다.”
“피고는 지난 12일 그리엣 가에 어둠의 표식을 소환한 유력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으며, 현재 소위 ‘데스이터’ 라고 불리는 범법집단과 연루된 혐의로 기소되었다. 맞는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봅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나는 연루자가 아니라 목격자라니까. 빌어먹을. 남자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욕설을 궁시렁거렸다. 자리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며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검사가 벌떡 일어서더니 재판장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발언을 신청했다. 재판장이 허락하자 그는 거만한 자세로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 본안의 핵심은 여기 앉아 있는 피고가 데스이터 조직과 행동을 함께하는 일원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인명피해가 있었던 만큼 이는 일반적인 범죄와는 다른 아주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데스이터의 일원이라고? 준은 검사를 향해 눈을 부라려 보였다. 그 날 사고 현장에서 바로 구속되어 수갑을 차고, 마법부 지하에 임시 수감된 후 지금 전원 배석 재판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사흘이었다. 꽤나 조급했던 모양이지. 마법부 놈들이란 원래 그런 족속들이니까. 하지만 그는 단언컨대 결백했다. 준은 등을 곧추세우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 손목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거추장스러웠다.
“피고는 제가 하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에 따라 유죄의 여부와 형량이 결정되므로 부디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검사는 옷깃을 뻣뻣하게 세우고 뒷짐을 진 채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잔뜩 기울인 채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4일 전 8월 12일 토요일 오후 4시경, 피고는 그리엣 2번지에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지만, 저는 그곳에 그라인딜로우를 배달하러ㅡ”
“4시 20분경, 그리엣 2번지에서는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근처를 지나가던 머글 다섯 명과 마법사 두 명이 폭발에 휩쓸렸습니다. 피고는 그 폭발을 기억하십니까?”
“똑똑히 기억합니다. 하지만...”
“피고는 그 곳에서 짧은 결투를 벌였습니다. 맞습니까?”
“...예. 싸웠는데...”
이미 그를 범인으로 확정해둔 것 같은 검사의 말투에 준은 답답하다는 듯 발을 꿈지럭거렸다. 무죄 추정의 원칙 따윈 이 망할 놈의 마법부에선 도무지 지켜지지 않는 건가? 준은 천식 환자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말입니다. 저는 범인의 얼굴을 봤습니다. 저는 목격자고, 무고한 시민이에요. 이 자리에서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피고는 이 사람의 얼굴을 기억합니까?”
검사는 무심하게 준의 말을 끊고는 주머니를 뒤적여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앞니가 뾰족하게 길고 쭉 찢어진 눈에 쥐 수염이 돋아 있는 남자였다. 준은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바로 이 놈이에요! 이놈이 제게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 주변에 전부 방어 마법을 걸었던 게 저라구요. 틀림없이 어둠의 표식도 이놈이 불러냈을 겁니다! 아니 아시면서 왜ㅡ”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진의 남자는 피고가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에 휘말려 지금 근처의 머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마법사입니다. 이 마법사가 상해를 입는 장면을 목격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재판장에게 사진을 건넨 검사가 참관석을 향해 손을 뻗자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뒤뚱거리며 걸어 나왔다. 준은 입을 딱 벌린 채 황망한 표정으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전개에 저절로 이가 부드득 갈렸다. 빌어먹을, 이게 뭐야.
“증인들은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검사는 두 사람을 준의 오른편 앞쪽 의자에 앉히고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감자처럼 배가 볼록 튀어나온 남자는 불안한 듯 눈알을 굴리다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그리엣 2번지에 사는 주민으로, 하르모니아 염색약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부부입니다. 그 날, 평소처럼 땅콩버터와 맥주를 사서 집에 돌아가던 중 큰 폭발음이 들렸고, 지금 의자에 앉아 있는 저 남자가 하수도를 폭발시키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사람 여러 명이 날아갔어요.”
“마.. 맞아요. 사진의 마법사가 저 남자를 향해 달려왔고 저 남자는 그에게 저주를 쓰려고 했어요.”
“저희들과도 눈이 마주쳤지만 저희들을 따라오진 않았어요.”
준은 말문이 막혔다. 기가 막혀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혹시 저 사람들에게 내가 돈이라도 떼먹었던가. 아니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엄청 큰 잘못을 저질렀었나? 이렇게 나를 엿 먹일 이유가 있어? 울분이 치밀어 혹시나 저 부부를 예전에 만난 적이라도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들끓는 화를 진정하려 숨을 고르면서 증인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상하게도 그들은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사진의 마법사가 그곳에 방어 마법을 걸어 거기 있던 사람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저 남자에게 기절 마법을 맞히려고 했지만 빗나갔어요.”
준은 순간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분명 자신이 그 주변에 방어 마법을 쳤고, 사진 속의 남자에게 기절 마법을 쏘았고, 빗나갔음을 기억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증인들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저 남자는 상대에게 맞받아 기절 마법을 쏘았고 사진의 마법사는 그것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저 남자는 하늘을 향해 어둠의 표식을 쏘았어요. 그 후로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끔찍해서....”
여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덜덜 떨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검사는 여자를 부축하며 그들을 다시 참관석으로 올려 보냈다. 준의 머릿속에 불쾌한 확신이 스쳤다. 기절 마법을 맞고 쓰러진 것은 사진의 남자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정신이 들어 보니 그는 참담한 사고 현장에 누워 있었고, 달려온 오러들에게 그곳에서 곧바로 체포된 것이었다. 검사는 망토에서 수첩을 꺼내 몇 자 적고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다 고개를 휙 돌렸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현장의 증거와 증인들의 증언으로 판단하건대 피고의 유죄를 확신하며, 마법사 보안법 위반과 살인 미수 혐의를 적용하여 아즈카반 50년 형을 청원합니다. 또한 피고는 데스이터의 다른 구성원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이건 조작이야!”
준이 목소리를 짜내 외치자 검사가 다시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작?”
“저들의 증언은 분명 당시 상황과 일치합니다. 저와 사진 속 마법사의 행동이 정확히 반대로 바뀌어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죠! 이것은 고도의 기억 조작으로....”
“제가 당신의 유죄를 확신하는 이유는, 사실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고도 당신이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검사는 품속에서 지팡이 하나를 꺼냈다. 준은 그것이 체포 당시 압수된 제 지팡이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검사는 준의 지팡이와 자신의 지팡이 끝을 맞댄 채 주문을 외웠다.
“프리오리 인칸타토!”
준의 지팡이에서 옅은 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입에서 뱀을 내뿜는 해골의 형상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약한 비명을 내질렀고 재판장은 소스라치게 놀라 헛기침을 하며 형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준은 삽시간에 얼굴이 굳어진 채 멍하니 제 앞의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사가 지팡이의 연결을 끊자 해골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어둠의 표식을 부른 게 이 지팡이라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29cm, 적송, 유니콘의 꼬리털. 피고의 지팡이가 맞죠?”
“...잠깐만... 나는 분명히...”
“이봐. 이제 발뺌할 생각 말라고. 차라리 여기서 끝나면 다행일지도 몰라... 당신과 쿠로오 테츠로가 만나는 것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검사가 의자 팔걸이를 손으로 꽉 움켜쥔 채 준의 눈앞에서 으르렁거렸다. 준은 마치 판단능력이 사라진 사람처럼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의 이름이 나오자 참관석이 아까 해골을 봤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게 술렁거렸다. 검사는 팔을 치켜들고 준이 앉은 의자 주위를 뱅뱅 돌며 목청을 높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쿠로오 테츠로는 소위 데스이터의 리더라 하는 ‘네 번째 배트’ 의 오른팔로 잘 알려져 있는 위험인물입니다. 에일린 부부 살해사건, 오베트 머글 일가 실종사건, 부잉교 폭파 사건 등의 유력 용의자죠!”
“...그 쿠로오 테츠로...?...”
“그래. 나도 들어본 적 있어...”
“여기 있는 피고 이사시키 준은 그 쿠로오 테츠로와 접촉한 적이 있으며 데스이터의 활동에 도움을 주었다는 혐의 또한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조작이라는 말이 나옵니까?”
준은 떨리는 손을 간신히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쿠로오 테츠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검사의 힘찬 웅변이 이명처럼 멀어지고 익숙한, 차분하고 매끄럽고 새까만 음성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
- 그가 당신을 정말 보고 싶어해.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해서 저러는 거야. 당신도 그를 아직... 아니야?
디멘터가 들어온 것 같았다.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냉기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분에 차 있던 그의 감정을 무기력하게 식혔다.
- 싫다니 유감이네. 어쩐다, 그가 슬퍼하는 건 썩 보고 싶지 않거든. 그나저나 당신은 왜 그렇게 그를 피하는 거야? 한때 엄청 찐한 사이였다고 들었는데... 사실 그가 당신을 강제로 끌고 오라지 않는 게 나한텐 좀 신기해서.
라디오의 음량이 줄어드는 것처럼 귀에 맴돌던 소리가 작아지면서 디멘터의 역겨운 숨 냄새가 싸하게 그를 가라앉혔다.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와 뇌의 일부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그래서 저는 마법 세계의 수호라는 검사의 사명을 안고 피고의 악랄한 진면목을 이 재판에서 전부....”
항변해야 하나. 준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쳐다보았다. 싸늘하고 공격적인 표정들을 보니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쿠로오와 만났다는 것은....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사실이야. 한구석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패트로누스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디멘터의 공격에서 보호하고 있었다. 말해봤자 소용없으려나. 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때 거기에 있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와 억울할 지경이었다. 그래, 그 때도 그랬어.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어.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들고 기분이 물 먹은 것처럼 빠르게 무거워지는 것을 보니 디멘터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듯했다. 슬쩍 곁눈질을 하자 디멘터의 까만 두건과 그 밑으로 드러난 징그러운 손이 보였다. 이대로 저 손에 끌려서 아즈카반에 가게 될까, 아버지가 그렇게 끌려갔듯이. 차라리 쿠로오가 찾아왔을 때 그대로 따라가버릴 걸 그랬나. 아니, 내가 아즈카반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면 나를 구하러 와 줄지도...
눈을 꼭 감고 온몸을 움츠리고 있던 준은 문득 벽난로 앞에 앉은 것처럼 몸이 보송하게 마르는 것을 깨닫고 흠칫 놀랐다.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듯이 주위를 맴돌던 디멘터가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세차게 뛰어대던 심장박동이 안정을 찾고 싱그러운 흙 같은 기운과 냄새가 온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은빛의 패트로누스가 뿜어내는 선한 결계가 그를 빠르게 감쌌다.
까마귀.
“재판장님! 존경하는 재판장님! 판결을 잠시 멈춰 주십시오!”
푸르스름하게 검은 망토가 휘날리며 준의 시야를 가렸다. 한 사람이 다급하게 목청을 높이며 심문장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 얼굴을 본 사람들이 크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망토 안에서 신분증과 지팡이를 꺼내 높이 치켜들고 재판장 앞에 섰다. 준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숨을 헉 들이마셨다. 짧고 까만 머리칼이 조명을 받아 금색처럼 빛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오러국 국장 사와무라 다이치입니다. 본심의 피고 이사시키 준의 변호인으로써 발언권을 요청합니다.”
재판장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한 손으로 코안경을 눈가에 올렸다.
“피고는 특별히 변호인을 요청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소만.”
“그렇습니다만, 법적으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는 언제든지 증인이나 변호인을 내세울 수 있으며, 형사재판의 경우 오러국장은 피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호인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피고는 누명을 쓴 것이 맞습니다. 이쪽이 진범입니다.”
사내가 몸을 돌리고 심문장 입구를 향해 팔을 뻗었다. 사내의 온화하고도 강인한 이목구비가 준의 시야에 들어왔다. 닮았다, 그리고 낯이 익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기억을 더듬는데 문이 열리고 오러 두 명이 한 남자를 양쪽에서 붙잡고 들어왔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크게 술렁거렸다. 아까 사진 속의 그 남자였다.
“수고 많으십니다- 피의자 호송을 맡은 오러 마츠카와 잇세이-”
“시라카와 카츠유키입니다. 국장님.”
남자를 붙잡고 들어온 오러들이 망토 안에서 오러 신분증을 꺼내 재판장에게 보여주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허공에서 의자를 꺼냈다. 자신을 오러국장이라 소개한 사내가 그 의자에 남자를 앉히고 밧줄로 몸을 묶는 광경을 검사와 준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오러국의 진범 체포 경위를 보고드리겠습니다.”
다이치는 재판장 앞에 한 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한 손으로는 양피지를 꺼내든 채 열중쉬어 자세로 섰다.
“어제 저녁 피의자가 입원해 있던 머글 병원에서 피의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오러 한 명이 확인을 위해 위장잠입을 했습니다. 그러나 병원 영안실에도, 머글들이 빈소라고 부르는 장례식장에서도 피의자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저희 오러들은 피의자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국장. 사망 소식이 있었단 말입니까? 듣지 못했는데요?”
“원칙적으로, 어둠의 마법 사고과 관련된 소식들은 오러국에 제일 먼저 전달되는지라 듣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다이치는 어깨를 으쓱했다.
“피의자는 급하게 도주한 탓이었는지 병원 침대에 순간이동의 흔적을 남겼고, 우리 능력 있는 오러들이 (다이치는 마츠카와와 시라카와가 서 있는 쪽을 흘긋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피의자를 찾아내 왜 거짓 사망 신고를 했는지 탐문했고 지팡이를 검사했습니다. 그의 지팡이에 역주문 마법을 실행한 결과 가장 최근에 폭발과 기절 주문을 발사한 것이 드러났고, 분석해 보니 폭발의 규모는 그리엣 가 사고의 규모와 일치했습니다.”
다이치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자 조금 전의 해골 형상처럼 연기로 이루어진 형상이 심문장 안에 나타났다. 저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 형상은 쭈뼛거리는가 싶더니 반쯤 우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음을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준의 지팡이로 어둠의 표식을 만들었다는 진술이 나오자 검사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다이치는 형상을 지팡이 속으로 빨아들인 뒤 범인에게 다가가 그의 오른팔을 걷어 보였다. 까맣게 새겨진 어둠의 표식을 확인한 재판장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이 표식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었습니다. 어둠의 마법 사건을 다루면서 이 정도 확인도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문신이 나온 이상 상황을 뒤집을 만한 것은 없었다. 검사는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입만 뻐끔대다 겨우 말을 꺼냈다.
“...그럼 증인들의 진술은 어떻게 된 겁니까?”
“증인이 있었습니까?”
다이치가 의외라는 듯이 돌아보자 검사는 아까 증언했던 부부가 있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니까 기억 조작이 있었던-”
“기억 조작을 했다.”
답답함에 쏘아붙이던 준의 목소리가 범인의 우물거림에 묻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범인은 준을 기절시킨 뒤 주변 목격자들에게 기억 조작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조금 전 증언하러 나왔던 여자가 충격을 받아 흐느끼는 소리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심문장에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범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이치는 다시 뒷짐을 진 채 재판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준은 그의 표정이 뭔가 알쏭달쏭하다고 생각했다.
“즉 여기 앉아 있는 피고의 무죄 방면을 청원합니다, 재판장님.”
재판장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오른편에 앉은 서기관을 한 번 돌아보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검사는 떫은 감을 씹은 얼굴로 준과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피고 이사시키 준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진범에겐 마법사 보안법 위반과 살인미수 혐의로 아즈카반 50년 형을 선고한다.”
의사봉이 내려가자 디멘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이 있는 심문장 한가운데로 들어왔고, 준은 다이치의 억센 손에 팔이 붙들려 의자에서 일으켜졌다. 다이치가 급히 준을 끌어당겨 자신의 뒤에 숨기자 디멘터들은 체념한 듯 앉아 있는 진짜 범인에게 다가가 그의 양팔을 붙잡고 미끄러지듯 심문장에서 나갔다. 굳이 사이에 서 있어야 한다면 디멘터보다는 오러들이 낫지, 하고 준은 다이치의 어깨 뒤에서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렸다.
자료 정리와 재판장의 몇 마디가 있은 후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참관인들과 배심원들이 하나 둘 퇴장하기 시작했다. 준은 나가기 전 검사에게서 지팡이를 돌려받았다. 검사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나를 어지간히 잡아넣고 싶었던 모양이지? 준은 냉소하며 바지자락에 지팡이를 열심히 문질러 닦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지팡이를 마음대로 만지는 건 정말 싫었다. 그제야 풀려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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