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니까 싫다구요, 네? 아니 잠깐이고 뭐고 무조건 싫다니까? 내가 이렇게 싫어하는 거 봤어요? 아 나 미치겠네. 나 이러다가 진짜 확 넘어뜨려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알아서 해요. 아,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좋아. 그럼 나한테도 생각이 있다 이거야.

 

 

 

 

야마다 리키치 X 도이 한스케 ]

도이 선생님의 맞선의 단

 

by. 카루린다카렌

 

 

 

 

 

 

리키치는 걸음을 빨리했다. 오랜만에 편안한 기분으로 느끼는 시장터의 공기는 느근하면서도 달큰하게 그의 몸을 휘감아 돌았다. 좌판에 앉아 생선을 파는 젊은 여인네 둘에게 눈을 한번 찡긋해준 후 돌아서자 그녀들이 킬킬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내가 인물은 어디 가서 빠지지 않지. 기분이 흐뭇해진 리키치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산등성이를 힐끗 바라보고는 바로 옆길로 돌아섰다. 장터에서 도이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닌술학원에 며칠간의 휴일이 있었던 터라 도이 선생님이 키리마루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였다. 마침 내일이 휴일 마지막 날이었고, 리키치 자신도 의뢰받은 일을 끝내고 아버지도 볼 겸 학원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라 하룻밤 도이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다음날 함께 닌술학원으로 떠날 작정이었다. 세 번째로 모퉁이를 돌자 작은 시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도이의 집이 보였다. 사뿐사뿐히 걸어가는 리키치의 입술 사이에서 엷게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도이 선생님ㅡ"

 

 

 

 

활기차게 열어젖힌 문 안에서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창문에 불이 꺼진 것을 발견하자 리키치의 얼굴이 이내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현관으로 들어서 보니 댓돌에는 신발이 없었고, 마루도 식어 있었다. 화로는 끈 지 오래되지는 않았는지 여느적 가늘게 연기가 소폭 피었다. 이부자리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한비짝에 놓여 있는 것을 보자 리키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어디 간 거지?

 

 

순간 엄청난 수의 도적떼가 들이닥쳐 도이와 키리마루를 잡아가는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자 리키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등 뒤의 칼을 뽑아드려고 했지만, 그렇다면 이부자리가 이렇게 가지런할 리가 없다며 스스로를 달랬다.

 

 

 

"거기 누구야?"

 

 

리키치는 황급히 뒤를 돌았다. 잠깐이나마 아까 한 상상이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리키치는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집주인 아저씨였다.

 

 

 

"아,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리키치 군! 정말 오랜만이네. 그런데 웬일이야? 한스케 만나러?"

 

"네. 도이 선생ㄴ...아니 한스케상 보러 왔는데 안 계시네요...? 어디 가셨어요?"

 

"오늘 아침에 키리마루랑 나갔어. 길이 엇갈렸나 보지?"

 

"....그런가 보네요."

 

 

 

날짜를 잘못 알았나? 리키치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자기가 착각했던 도이 선생님이 착각했던, 하루이틀 정도의 오차야 없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이가 해주는 생선구이를 먹지 못하게 됐다는 생각에 이르자 리키치는 풀이 죽었다. 부러 생선가게를 들르지 않은 게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그렇다면 오늘 밤은 여기서 묵을 이유가 없어졌으니 땅거미가 완전히 지기 전에 닌술학원으로 서둘러 달려갈 참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리키치가 마루에 걸터앉아 다시 신발을 묶고 있는데 주인집 아저씨가 뭔가 쭈볏쭈볏하더니 리키치에게 말을 걸었다.

 

 

 

"저, 리키치 군. 지금 한스케 보러 가는 건가?"

 

"아, 네. 말하자면? " ( 껴안으러 가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리키치는 생각했다.)

 

"그럼 한스케한테 말 좀 전해 주게. 하루코쨩이 한스케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깐, 한번 더 만나서....."

 

"뭐라고요????????"

 

 

 

 

리키치는 소리를 쳤다. 주인 아저씨가 놀라 뒤로 넘어졌다. 궁둥이를 찧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냐고 왱알왱알대며 면박을 놓는 주인아저씨 앞에 리키치는 얼굴을 들이대고 허리에 손을 얹은 채 험상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음.에.들.어.한.다.고.요?"

 

"...그, 그래!!!! 갑자기 웬 과민반응이야?"
 

"누가 누구를?"

 

"아 하루코쨩이 한스케를!!!!! 아니 왜 승질을 내냐구, 자네도 선 볼 나이라 그래??"

 

"ㅁ...뭐라구요??? 선???"

 

"나 참, 내가 왜 이걸 리키치 군한테 설명하고 있어야 되는지 당최 모르겠네. 하루코쨩이랑 한스케가 선을 봤는데 하루코쨩이 한스케가 맘에 든다고 했다고. 한스케도 이참에 노총각 신세 좀 벗으라고 동네 할머니들이 주선해준 모양인데 한스케는 어땠는지 몰라도ㅡ"

 

"알았어요. 거기까지. 그 이상은 듣지 않겠어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저씨."

 

 

 

 

 

리키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을 떼더니 네 발 달린 늑대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주인 아저씨가 뭐라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학원 문 앞을 비질하고 있던 코마츠다는 우라야마 뒤로 해가 완전히 넘어간 것을 확인하자 품 안에서 자물쇠를 꺼냈다. 학원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내일까지 휴일인지라 학교는 많이 한산했다. 학교에 있는 사람은 원장 선생님과 6학년들, 5학년 사부로, 4학년 슈이치로, 3학년과 2학년들은 전부 집에 가고 없었고 1학년들은 이반의 히코시로, 로반의 후시키조, 하반의 쇼자에몽과 단조, 그리고 키리마루가 도이 선생님과 함께 와 있었다. 선생님들은 안도 선생님과 노무라 선생님들 제외하면 전원이 휴일에도 집에 가지 않고 근무 중이었다. 코마츠다는 빗자루를 한쪽에 세워 놓고 빗장에 자물쇠를 걸었다.

 

"!!!!!!!!"

 

 

 

 

그때 밖에서 손 하나가 문틈으로 불쑥 끼어들어오자 코마츠다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리키치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코마츠다는 놀람을 진정하지 못했는지 우는 소리를 냈다. 리키치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다 가슴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 분명했다. 거친 호흡을 연이으며 리키치가 손을 내밀자 코마츠다는 우는 소리로 입문표에 사인해주세요ㅡ라고 말하며 입문표를 내밀었다. 사인을 끝낸 후 겨우 진정된 듯한 리키치에게 코마츠다가 자고 가시는 거냐고 묻자 리키치는 대답 대신 짧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야마다와 도이의 사무실로 날래게 뛰어갔다. 코마츠다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

 

 

사무실의 문을 열어젖히기 무섭게 리키치는 으르렁대며 야마다 선생님을 불렀다. 리키치의 깜짝 등장에 놀란 야마다와 도이는 당황한 얼굴로 리키치를 일단 들이고 앉히려 애썼다. 리키치는 두 달간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야마다의 협박에 일단 진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도이가 차를 내주자 리키치는 도이를 향해 인상을 썼다. 도이는 흠칫했다.

 

 

 

"그래. 니가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여기 쳐들어왔는지 들어나 보자."

 

"아버지. 대체 왜!!!! 도이 선생님을!!!"

 

"어? 나?"

 

"선을 보도록 내버려두신 겁니까!!!!!!!!!!"

 

 

 

 

리키치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울려퍼지자 야마다는 미묘한 눈빛으로 도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도이는 잘못한 거 아는 10살짜리 소년마냥 움찔 돌아앉으며 눈길을 피했다. 잡아먹을 듯한 리키치의 형형한 눈이 야마다에서 도이를 향했다. 도이는 리키치와 눈이 마주치자 그만 헤, 하고 웃어버렸다. 그 눈웃음이 이완제 역할을 했는지 리키치는 얼굴을 붉힌 채 눈을 꽉 감더니 하아, 하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어보였다.

 

 

 

"이봐 도이 선생, 선 봤어?"

 

"아....제가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나 보네요. 하하하."

 

"지금 깜빡했다고 하면 다에요, 선생님!!!!!"

 

"아하하, 리키치 군, 미안해. 미안. 미안해."

 

"하.... 저 진짜 이러다가 닌자 일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홧병 나서 죽을지도 몰라요."

 

"아니 그 선은 어떻게 보게 된 건데?"

 

"그게.... 동네 할머니들이.... 하하하. 제가. 너무 나이가....많은데 숫총각... 인게... 가엾다고. 하하. 하하하...."

 

"아니 선생님. 왜 숫총각 아니라고 말을 안 했어요?"

 

"어? 어?;;; 내가 무슨 숫총각이아니라고....그래?"

 

"하. 나랑 한 건 대체 뭔데ㅡ읍!!!!읍!!!!!으그느으으!!!!!"

 

 

 

도이는 웃는 얼굴을 한 채 손을 뻗어 리키치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두 사람 관계를 (리키치가 하도 막무가내라 어쩔 수 없이) 야마다가 인정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있는 앞에서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건 현명하지 않은 처사일 듯 싶었다. 아무리 살아있는 보살, 현존하는 부처인 야마다라고 하더라도 이미 둘 사이에 몸이 오갔다는 말을 들으면 충격받고 쓰러져 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도이는 리키치에게 바짝 몸을 숙여 귀에 대고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이따가 방에 둘이 가서 얘기하고 여기선 조용히 해. 리키치는 잠깐 눈썹을 찌푸려 보였으나 도이가 귓바퀴에 살짝 입술을 문지르자 잠잠해졌다. 도이는 웃는 얼굴로 리키치에게서 떨어져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뭔데...?"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야마다 선생님."

 

"(의심의 눈초리)"

 

"그,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리키치 군은?"

 

"....그 주인집 아저씨가 전해 달랍디다. 하루코쨩이 한스케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 한번 더 만나달라고!!!!!!!!"

 

 

 

리키치는 생각하니 다시 열불이 치솟는 듯 고개를 든 채 허리를 숙이고 양 팔꿈치를 양반다리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마음에 들었대...?"

 

"아주!!!! 쏙!!!! 미친듯이!!!!!! 좋아서 죽어버릴만큼!!!!! 맘에 들었나 봅디다!!!!!!!!!!!"

 

 

 

 

도이는 피식 웃었다. 이러나 저러나 어린애인 건 어쩔 수가 없다.

 

 

 

"리키치, 내가 왜 오늘 하루 일찍 왔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아 맞다. 나 오늘 선생님네 집에 하룻밤 자러 갔었는데 없어서 우울했다고요. 안 그래도."

 

"내가 내일 돌아간다는 거 알면 할머니들이 그 하루코 씨랑 하루 내내 데리고 다닐까 봐 무서워서 그랬다."

 

"......"

 

"아무리 나라도 말이지~ 그런 건 못 견디겠단 말이야."

 

".......그래서 앞으로 전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코씨는 안 만날 거에요?"

 

"엉?"

 

"앞으로 전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만날 거냐고!"

 

 

 

도이는 순간 눈을 크게 뜨더니 콧잔등을 찌푸렸다.

하루코를 만나고 만나지 않고는 도이의 생각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엄.......리키치.....그게 있잖아."

 

"뭐요? 어디 한번 대답해 봐요."

 

"내가 당연히 하루코씨의 마음을 받아들이진 않겠지만, 하루코씨가 나를 좋아하든 말든, 근데 할머니들을 계속 피해다니는 건 엄청 어렵거든...... 그리고 나 거기서 계속 살려면 할머니들이랑.....음..... 잘 지내야 하는....것도 있고.......그래서 진짜로절대로무슨마음이있어서만나는건아니고할머니들이보라고하면한두번정도는정말어쩔수없이ㅡ"

 

"싫어. 절대로 싫어. 진짜 절대로 안 돼요. 아니 잠깐이고 뭐고 무조건 싫다니까? 나 또 이런 얘기 들려오면 그땐 진짜 일낼줄 알아요. 여자고 뭐고 없어. 닌자가 그런 거 봐주는 거 봤어요? 아님 내가 이렇게 싫어하는 거 본 적 있어요? 있으면 말해 봐. 그럼 내가 1000분의 1정도는 양보할 의향이 생길락 말락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으니까."

 

 

 

 

야마다는 아들의 랩 실력에 혀를 내두르면서 마음 속으로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야마다는 몸을 일으키더니 도이와 리키치를 한꺼번에 방 안에서 끌어냈다. 그리고는 근처를 지나가던 쇼자에몽에게 (쇼자에몽이 어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이 선생님과 리키치 형을 저기 저 보이는 건물까지 바래다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4학년에 다니던 아이가 자퇴하고 쓰지 않는 방이었다) 그들을 내보내고 문을 잠그면서 야마다는 진심으로 저 두 사람은 자기가 둘이서 무엇을 어디까지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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