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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키 테츠야 x 이사시키 준 x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테츠준크리)

사와무라 다이치 x 스가와라 코우시 x 아즈마네 아사히 (다이스가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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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억 상실의 시대 (4)












스가는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목이 텁텁한 것이 뭘 좀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날은 아직 한밤중이라 캄캄했다. 물이 어디 있다고 했더라, 졸음이 가시지 않은 눈을 깜빡거리며 어둠을 저어 방 밖을 나오는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부엌 바로 옆의 꽉 잠긴 문 안에서 웅얼대는 소리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잠을 늦게 자나? 대수롭지 않게 부엌을 살펴보던 스가의 귀에 솜털을 쭈뼛하게 할 만한 이야기가 들어왔다.




우선은 밧줄로 묶어야겠군.”


서낭당 헛간이면 넣어놓을 만 하겠지?


비리비리한 게 한 팔로도 금방 잡을 것 같더만.”


자네가 큰일을 했네. 어디 여기에 의사가 흔하던가?”




스가와라 코우시는 말했듯이 머리가 명석한 사람이었다. 설마 저게 나를 두고 하는 얘기겠어, 하는 의심은 그에게 필요 없었다. 물 마시는 것을 단념하고 스가는 급히 방으로 돌아와 숨죽여 가방을 쌌다. 순간이동도 할 줄 몰랐고 빗자루도 없었기에 발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이치가 순간이동 시험 볼 때 같이 봤어야 했다고 후회하며 스가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단단히 동여매고 몰래 집을 나섰다. 최대한 발걸음을 조심조심 걸으며 마을 길을 돌아서는데 울타리에서 한 할머니와 마주치고 말았다.




“!”


? 이거 오늘 오신 의사 선생 아니우?”


“...”


안 자고 어딜 급하게 가려고 하우?”


“저기... 친구한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죄송하지만 지금 가야..”


“밤이라 전보도 우편도 없는데 그게 무슨 소리여.”


“제발요. 비켜주세요.”


아니, 아니, 그러면 안 되지. 여기 이 의사 가네!”




할머니의 육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쩌렁쩌렁한 소리가 집들을 울렸다. 마치 사이렌이 울린 것처럼 사람들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나왔다. 아까 작당을 하고 있던 자들이 분명했다. 그 중 몇몇이 밧줄을 든 것을 본 스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거기 서!”


도망 못 가!”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스가는 지팡이를 꺼내 미친 듯이 마법을 쏘아 댔다. 그러나 명중률이 형편없어 쓰러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역시 이상한 놈이었어, 마술 부리는 놈이야! 험한 일로 단련된 남자들의 팔뚝힘은 스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셌다. 한두 사람이 필사적으로 달리는 스가의 몸을 덮치자 손에서 지팡이가 빠져나와 데굴데굴 굴러갔다.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밧줄을 든 사람들이 토끼몰이하듯 그에게 다가왔다. 잔뜩 엉킨 팔과 다리들 사이로 마대자루가 보였다. 잡힌다. 싫어, 싫어. 패닉에 싸여 몸부림치는 스가의 흐려지는 시야에 뒤에서부터 잔인하게 터져나가는 사람들의 몸이 들어왔다. 또다시 초록색 섬광, 하지만 이번에는 붉은색 피, 공중에 부자연스럽게 들어올려졌다 내팽개쳐지는 사람들, 정신이 어질해 자신을 붙잡고 있던 남자들이 사라졌다는 것도 눈치챌 수 없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짧고 검은 머리와 금색 눈동자. 순간 스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그 얼굴이 닳은 기억의 저편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이치...”




가 아니야.


스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스가, 스가?”




스가는 힘없이 눈을 깜빡였다. 점점 환해지는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예쁘게 조각된 대리석 천장과 성 뭉고 병원이라고 쓰인 치료사 가운이 눈에 들어왔다.




아사히...”


"정신이 좀 들어?"


"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좀 앉을래? 앉을 수 있겠어?”




친우의 다정한 손길에 기대 스가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정신을 잃은 다음의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은 검은 머리의 마법사. 스가는 그와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었는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베일에 덮여 잠들었던 기억이 예고 없이 되살아나듯 그는 그 마법사와의 모든 일을 기억했다. 왜 갑자기 그렇게 되었는지는 역시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된 거야...?”


“글쎄 유우키 씨가 어제 새벽에 너를 업고 응급실로 들어오지 뭐야. 내가 당번이어서 망정이지 정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구. 너는 의식이 없지, 유우키 씨는 널 놔두고 그냥 휙 가 버리지...


유우키?




스가가 눈을 깜빡였다.




, 그 있잖아. 순수혈통 부잣집. 너 데리고 온 사람이 유우키네 둘째 아들, 이름이 뭐였더라... , 유우키 마사시. 우리랑 같은 학년에 그리핀도르 학생이었고. 기억 안 나?”


혹시 다이치랑 퀴디치 팀 같이 했던?”


“그래, 세 학년 위에 형도 하나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죽었잖아."


"...다이치가 엄청 좋아했던 그 말없는 선배?"


"맞아. 그 형이랑은 사이 좋았던 것 같은데 동생이랑은 어땠는지 잘 몰라..."


"...유우키.... 머리 짧고. 까맣고."


"어... 그랬지.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너 유우키 마사시랑 무슨 일 있었던 거지? 엮여서 별로 좋을 것 없는 사람인데...”




스가는 잠시 말을 잃었다. 머리를 무언가가 둔탁하게 때리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짧은 머리와 금색 눈동자. 기숙사가 달랐는지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유우키라는 이름만은 똑똑히 기억하는 터였다. 유우키 가문은 마법사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몇 안 남은 오래된 순수혈통 가문들 중 하나였고, 가주 역할을 하던 장남이 요절한 뒤로는 차남이 뒤를 이어 가문을 경영하고 있었다. 유우키 마사시. 역시 아는 사람이었어. 그가 자신을 구해 준 바로 그 사람이 틀림없다고 스가는 생각했다. 자신을 병원까지 업고 왔다면 더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사히는 친구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되는 결론을 읽지 못한 채 불안해하며 스가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스가는 옷매무새를 고친 뒤 침대에서 일어났다. 강한 확신이 들었다.




아사히, 나 지금 당장 그 유우키 마사시를 만나야 해.”

 




*





 

글쎄, 난 잘 모르겠어. 모진 성격이 아니라며?”


멍청하지도 않아.”


만약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기억을 없애면 돼.”


그러다가 사와무라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마사시.”




넓은 서재 안 커다랗고 까만 가죽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의자의 등받이를 바라보며 서 있었는데, 그는 조금 전 의자에 앉은 사람으로부터 마사시라는 이름으로 불린 남자였다. 앉아 있는 사람이 의자를 빙글 돌려 서 있는 사람과 시선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쌍둥이라고 착각할 만큼 닮아 있었다.




아직 대범하지 못하구나.”




의자에 앉은 남자가 자신의 짧은 머리를 손으로 천천히 반듯하게 넘겼다. 마사시는 뒷짐을 진 채 다소 부루퉁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나 대신 일을 하던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왜 쓸데없는 소리야? 형이 나로 변신해서 그 스가와라라는 사람을 병원으로 옮긴 건 사실이잖아. 난 그런 거 정말 싫다고.”


그럼 온 세상에 사실은 유우키 테츠야가 살아 있었다고 광고라도 하게?




의자에 앉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팔걸이를 꽉 쥔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그 음성에 배어 있는 성남을 직감한 마사시는 여전히 부루퉁한 표정이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도련님. 손님입니다.”




집사의 노크 소리에 잠깐의 침묵은 금세 깨어졌다. 마사시는 한숨을 푹 쉬고는 책상에 아무렇게나 굴려 둔 반지를 다시 주워 끼었다. 의자에 앉은 남자가 조용히 읊조렸다. 이리로 데려 와. 마사시는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고는 집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스가와라는 아사히가 가르쳐 준 대로 길을 걸어 유우키 가문의 대저택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나지 못할 것도 조금은 각오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집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바보가 아니라면 내가 찾아올 것을 예상했겠지. 스가는 바깥을 청소하는 집요정들이 안내하는 대로 저택의 호화로운 잔디밭을 지나 현관 밖에 늘어선 손님용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오 분보다 조금 덜 기다렸나 싶을 무렵 커다란 현관문이 열리고 안에 집사처럼 보이는 늙은 남자가 단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도련님이 거실에서 기다리십니다. 스가는 공간의 화려함과 크기에 압도되어 살짝 주눅이 든 채로 집사의 뒤를 따랐다.




마사시 도련님, 스가와라 코우시 씨가 오셨습니다.”




사람이 몇 명은 파묻힐 만큼 큰 소파 위로 뒤통수만 삐죽 올라온 것을 보고 스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마사시는 뒤를 돌아보더니 성큼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체격이 컸었던가? 스가는 손을 마주 잡으며 그의 커다란 몸집과 이목구비를 차분히 훑어보았다. 상대를 뚫어보는 듯한 금색 눈동자. 하지만 머리가 생각보다 더 짧은 것 같았다. 어두울 당시라서 잘못 봤었나? 머리카락으로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지. 다만 체격이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렴풋이 학교에 다닐 시절의 모습이 남아있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스가가 입을 열기 전 마사시가 먼저 선수를 쳤다.




찾아주실 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죄송합니다만, 스가와라 씨가 만나셔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


이쪽으로.




스가는 잠깐 마사시의 말을 해석하느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마사시는 스가를 데리고 거실 한편에 있는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갔다. 화려하게 조각된 난간을 잡고 마사시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는 동안 스가의 머릿속에서는 불안한 물음표들이 퐁퐁 튀어올랐다. 그렇다면 나를 구해준 것이 유우키 마사시가 아닌가?




이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늑대의 머리가 조각된 황동 문고리가 달린 커다란 문 앞으로 스가를 안내한 마사시는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는 듯 가볍게 목례를 하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의문과 약간의 섬짓함을 안은 채 스가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들어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그 순간 스가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마구 떨렸다

그를 다이치로 착각하게 한 기시감이 무엇이었는지 그제야 분명해졌다.




“...”


문은 닫았으면 좋겠는데.”


“....살아 있었군요.”


거기 앉지.”




테츠야는 가죽 의자에 살짝 몸을 걸치고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손짓으로 스가에게 맞은편의 의자를 건넸다. 스가는 문을 닫은 뒤 테츠야가 가리키는 의자 앞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방은 어두웠다. 책상 한켠에 놓인 반딧불이를 담은 램프가 이 공간의 유일한 빛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 당신이 죽은 줄 아는데.”


다행이군.”




테츠야는 느리지만 담백한 목소리로 힘있게 말문을 열었다.




그쪽이 살아 있다는 걸 알았으니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내 편이 되거나, 죽거나.”


당신이 데스이터인 줄은 몰랐어요. 정확히 말하면 유우키 가문이.”


마사시는 아냐. 그리고 죽인다고는 했지만 널 죽이지는 않을 거다. 그러면 오러국이 얽힌다는 걸 알고 있어. 특히 사와무라 다이치가.


다이치가 그토록 당신을 존경했는데, 어째서 이런 길을 가는 건가요?”




테츠야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스가는 여전히 그의 금색 눈동자를 단호하게 마주보며 서 있었다.




나는 누구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당신은 나에게 원하는 게 있어요. 그렇죠?"


"알려진 것보다 더 명석한지도 모르겠군."


"그렇지 않다면 날 거기서 구해줄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 대답을 하러 날 찾아왔다는 건가."


“아뇨. 난 그쪽한테 직접 듣고 싶은데요.




한동안 테츠야와 스가는 서로를 탐색하듯 쏘아보았다.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먼저 침묵을 깨뜨린 것은 테츠야 쪽이었다.




내가 처음 구해 줬을 때, 넌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




호의는 베풀 만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기억의 산을 넘어 메아리처럼 마법사의, 아니 테츠야의 목소리가 스가의 귀에 닿아왔다. 스가는 입술을 깨물고는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같은 생각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몇 번이나 죽을 뻔했어도 말인가?”


당신과 같은 생각.


"음?"




스가의 목소리는 살짝 눈물이 섞인 듯 떨렸다. 그는 허리를 굽혀 의자에 천천히 반듯하게 앉았다. 테츠야의 커다란 눈이 스가의 행동을 좇아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미묘하게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거에요."


"뭘 말인가?"


난 어렸을 때 몸이 약했어요.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셨죠. 나는 머글 태생이 아니었고, 내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나는 철도 없이 머글 친구들에게 신기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죠.”


“....”


하지만 약하고 어렸던 나는 마법을 잘 쓰지 못했고, 신기한 구경거리에 도취된 아이들은 내가 마법을 보여주지 못하는 날이면 날 때리거나 못살게 굴었어요.”


그랬군.”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뭔지 알아요?


"...."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까,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졌어요."


"...."


“구해 줘서 고마워요. 그 말을 하려고 왔어요.”




망설임 없이 팔목을 걷어 올려 그에게 내미는 스가와라를, 반짝이는 금색 눈동자로 뚫어지게 쳐다보던 테츠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의외로군.”


이걸 원한 게 아니었나요?


"사람들은 스가와라 코우시가 머글을 아주 사랑한다고 알고 있을 텐데."




스가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식 웃음을 짓던 테츠야의 표정이 스가를 살피듯이 날카로워졌다.




사와무라 다이치를 어쩔 생각이지?”




스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결국엔 나를 이해하게 될 테니까."


확실히 해 두겠는데, 혹시라도 마법부나 오러국과 연대할 생각이 있거든 지금이라도...


난 오러로서의 다이치를 말한 게 아니에요.”




짧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테츠야는 스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지팡이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신은 용서받을 수 없다.”


“...알고 있어요.”


아무리 나라도 표식을 새기는 일은 할 수 없으니, 주군을 만나러 갈 수 있게 통로를 열어주겠다.”




테츠야는 중세 양식으로 조각된 벽난로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불을 피웠다. 스가의 눈동자 위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테츠야를 처음 만나던 그 날의 산불처럼 비쳤다. 플루 가루를 한 움큼 집어든 테츠야가 불 위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린 뒤 가루를 불 속에 던지자 펑 하는 소리를 내며 불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스가는 망설이지 않고 벽난로 앞에 다가와 일렁이는 불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어요.”


뭔가?”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나에게 기억력 마법을 걸지 않았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기억할 수 있는 건가요?”




테츠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오래된 마법이야. 스위치를 누르면 기억이 살아나는.”


헤에, 역시 고위 마법이었어. 원리가 궁금하네요. 나중에 가르쳐 줄 수 있나요?”


“....”




테츠야가 대답하지 않자 스가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불꽃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께 빚을 졌군요.”


주군을 만나면 그 즉시 내 이름을 대야만 좋지 않은 일을 피할 수 있다. 주군의 얼굴을 보거든 바로 무릎을 꿇어앉고...”




테츠야의 시선이 불꽃에 새빨갛게 물든 스가의 아름다운 은발에 닿았다.




“....‘네 번째 배트가 보냈다고 말해.”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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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키 테츠야 x 이사시키 준 x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테츠준크리)

사와무라 다이치 x 스가와라 코우시 x 아즈마네 아사히 (다이스가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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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억 상실의 시대 (3)









한 소년이 은색 머리칼을 나부끼며 미친 듯이 산중턱을 달리고 있었다. 그 뒤로 성난 표정을 한 사람들 한 무리가 위협적으로 횃불을 흔들면서 소년을 쫓았다. 소년은 두려움에 헐떡이며 정신없이 다리를 움직이다 그만 나뭇가지에 걸려 앞으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곱상한 뺨에 흙이 묻고 무릎이 까져 옷 위로 피가 배어나왔다. 메고 있던 가방에서 말린 맨드레이크 뿌리와 투구꽃 열매 같은 약초들이 땅에 흩어졌고, 소년은 지저분해진 손으로 서둘러 그것을 주워 담다 뒤를 돌아보았다. 넘어져 주저앉은 자신과 성난 사람들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소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질렀다.



 

*



 

스가와라 코우시는 머글을 좋아했다.

그의 부모는 입으로는 세상의 모두가 평등하단다- 라고 읊조리면서 정작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법사인 아들을 낳아 3대째인 마법사 가문이 되어 순수 혈통이라고 불릴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코우시가 순수 혈통이 아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특히 사와무라 다이치와 아즈마네 아사히는 코우시의 부모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코우시가 머글을 좋아하는 것이 친구들 탓이라고 여기며 꺼려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스가와라는 본래 천성이 상냥한 위인으로 머글과 마법사가 능력과 상관없이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으며, 머글이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을 때 들키지 않는 선에서 마법을 이용해 도와주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굳이 네가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 사람들은 알아서 잘 살 거야. 어머니의 애써 꾸며낸 말투에도 그는 그저 웃으며 지팡이 끝에서 꽃을 피웠다.


그 날도 스가와라는 홀로 머글들의 마을을 여행하고 있었다. 학교는 이미 졸업한 뒤였지만 직장을 갖기 전 이곳저곳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래번클로 출신으로 본래 머리가 명석했던 그는 특히 약초학과 마법약에 아주 뛰어났고, 덕분에 몸이 아픈 머글을 만나면 능력이 닿는 한 치료를 해 주곤 했다. 누가 그에게 출신을 물으면 의과 대학 다니는 학생입니다, 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스가는 머글의 사회에도 밝은 편이었다. 그들은 스가의 친절에 때로는 감사했고, 때로는 낯설어했으며,



이런 약초는 본 적이 없는데.”



때로는 탐욕적이었다.




- - -


 


저기 있다!”


약초도 있어?”


경찰은 안 왔지?


아까 보니까 이상한 금화도 들고 다니던데.”




스가는 공포로 하얗게 질린 채 품 속을 더듬어 지팡이를 꺼냈다. 학생일 때도 결투용 주문에는 능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아무리 머글이라도 이 많은 사람들과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횃불에 사람들의 얼굴이 무섭게 일렁였고, 그 중 몇몇이 칼과 노끈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한 스가는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무엇인지 모를 주문이 가장 앞장서 있던 남자들 중 한 명의 가슴에 명중했고 그가 자빠지는 것을 본 사람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봤어? 역시 인간이 아니야! 괴물이야! 약초만 뺏을 게 아니라 죽이는 게 낫지 않겠어? 죽여! 그냥 죽여버려! 그들과의 거리가 몇 걸음 안으로 좁혀졌다. 스가와라는 신음하며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아바다 케다브라.”




꼭 감은 눈두덩 위로 초록색 섬광이 번쩍하는 것이 느껴졌다. 들을 수 있을 리 없는 주문을 들었다는 비현실적인 충격에 스가는 살짝 실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망토와 두건을 쓴, 키가 큰 마법사 하나가 저들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저주를 맞은 머글 남자 하나가 쓰러져 죽은 것 같았다. 마법사는 동요 없이 지팡이를 한 번 더 휘둘러 또 초록 섬광을 쏘았다. 한 사람이 더 거꾸러지자 그들은 횃불을 툭툭 떨어뜨리며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려다 서로 발이 걸려 넘어지고 산자락에 불이 붙는 아수라장을 향해 마법사는 다시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스가는 안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켜 마법사의 검은 망토를 붙잡았다.




안 돼!




마법사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을 쏘았다. 스가가 숨가쁘게 제 지팡이를 움켜쥐며 고개를 돌렸지만 쏘아진 섬광은 초록빛이 아닌 붉은빛이었다.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산을 태우고 있는 불길이 일렁이며 마법사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의 무미한 표정을 올려다보는 스가의 눈 위로 정돈된 이목구비와 짧고 검은 머리칼이 비쳤다




다이치?”




마법사의 눈이 스가의 얼굴을 향했다. 금빛의 눈동자가 불을 받아 번쩍였다.




아구아멘티.”




마법사는 아직 자신의 망토자락을 붙잡고 있는 스가의 손을 떼어내고 지팡이를 휘저으며 하늘에 거대한 물의 천장을 만들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주문을 몇 개 더 중얼거리더니 마법사는 무섭게 번져가는 산불 위에 폭포처럼 꿀렁대는 물을 쏟았다. 치이익, 하는 연기가 한가득 크게 피어오르며 불이 꺼졌다.


다이치가 아니야. 스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다이치가 아니라... 공황 상태에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법사는 어느 새 지팡이를 품에 넣고 스가의 어깨 너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 아까 죽은 두 명의 머글 시체가 있는 것을 알아챈 스가가 조금 헛구역질을 했다.




당신은 누구죠?”




간신히 힘을 짜낸 목소리를 들은 마법사는 힐끗 스가를 돌아보고는 두건을 벗었다. 아주 강직해 뵈는 얼굴이었지만 어딘지 비인간적인 냄새가 풍겼다. 아무렇지 않게 살인 저주를 두 번씩이나 날리는 걸로 보아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감히 다른 마법사의 눈앞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마법사는 세상에 단 한 종류뿐이다. 스가는 주먹을 꽉 쥐고 침을 목구멍으로 꿀꺽 넘겼다.




목숨을 구해 줬는데 고맙다가 아니라 너는 누구냐가 먼저로군.”


.. 고맙...습니다....”


아까 다이치라고 한 것은 마법부의 오러국 국장 사와무라 다이치를 말하는 건가?”




위압적일 만큼 낮고 강한 목소리가 스가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스가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 남자의 체격이 다이치보다 더 크고 넓은 것 같았다. 스가가 저항한다는 것을 깨닫자 마법사는 유쾌하지 않은 듯했다.




대답이 없다는 건 그렇다는 뜻이겠지. 그와 친한 사이인가?


“...”


“...시시하군.”




스가가 대답하지 않자 마법사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다시 지팡이를 꺼냈다. 스가는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두 번은 구해주지 않겠다. 나를 봤다는 기억은 잊도록. 오블리비-”


잠깐만요!”




스가의 목소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는지 마법사는 움찔 놀랐다.




두 번은 구해주지 않겠다는 게 무슨 뜻이죠? 당신은 누구에요?”


날 못 알아보겠나?”


“......?”




마법사의 표정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 아무래도 좋다. 이제 그만 기억을..”


기다려요. 내 말에 대답해요! 왜 죽였죠? 죽일 것까지는 없었잖아요?”


이상한 물음이군. 저들이 먼저 너를 죽이려고 했다.




무어라 말을 뱉어보려 하던 스가는 문득 말문이 막힌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


호의는 베풀 가치가 있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우리가 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머글에게 숨기고 살아가는지 모르나? 그 사실을 들키면 우리는 시기와 질투와 공격의 대상이 된다. 아까의 너처럼.”


그렇지 않아요! 나를 구해준 건 고맙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마법사는 다시 스가의 얼굴을 향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금빛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 마을로 내려가서 저 머글들도 처리해야 해. 나를 만났다는 사실만 지워줄 테니 공격받은 기억은 그대로 가지고 가서, 다시는 사람들을 도우러 다니지 마라. 오블리비아테!”




불쾌한 환상이 그의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대고 검은 망토를 입은 사내가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스가는 불타버린 산 속에 홀로 쓰러져 있었다.

 



*




 

그 날의 충격에도 스가와라는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머글들에게 공격받았던 기억은 한동안 트라우마처럼 그를 움찔움찔 놀라게 만들어, 스가가 머글들을 돕는 것은 그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위험해 보이지 않는 어린 여성 정도가 스가의 호의를 받는 몇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한편, 아주 이상한 일이었지만 검은 머리의 마법사에 대한 기억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와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볼 때마다 어렴풋이 그때 어떤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싶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옅어지긴 했으나, 분명히 찌꺼기처럼 눌어붙은 기억을 스가는 몇 번이나 되살리려 노력했고 실패했다. 마법사의 본능적인 육감이 기억 속의 남자를 일깨워야만 한다고 그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 홀로 평화로운 나날들이 흘러가자 스가는 다시 느긋해지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숲에서 뿔 달린 민달팽이와 어린 뱀의 송곳니를 구해 종기 치료제를 만든 스가는 점점 더 머글들의 마을 가까이로 내려가는 일이 많아졌고, 이상하게도 검은 머리 마법사에 대한 기억 역시 그의 여유에 상응하듯 희미해지며 어떤 형체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사라져 갔다.




형은 마법사야?”




시골 마을의 길가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불꽃을 만들며 쉬고 있던 스가에게 한 아이가 말을 걸었다. 스가는 화들짝 놀라 지팡이를 숨겼다.




?”


아까 불꽃 만드는 걸 봤어.”




아이는 더러운 소매로 코를 닦았다. 스가는 당황한 듯 살짝 웃었다.




그건 그냥 불꽃놀이 폭죽이야.”


난 심심해. 나도 불꽃놀이 하고 싶어.”




아이가 조르기 시작했다. 스가는 잠시 고민하다 가방에서 강낭콩 젤리 한 봉지를 꺼냈다. 더 맛있는 과자를 주고 싶었지만 그것밖에 없었다.




. 이거 먹어. 폭죽은 다 써 버렸어.”




아이는 신기한 듯이 과자를 바라보다 뭉툭한 손으로 한 움큼을 집어 입에 넣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퉤퉤 뱉었다.




맛없어!”




스가는 빙긋 웃으며 아이에게서 젤리 봉지를 도로 받았다. 아이의 더러운 옷 사이로 배꼽 부근에 빨갛게 고름이 찬 종기가 보였다. 스가는 아이의 옷을 들춰 보았다. 불거지고 꽤 오랫동안 방치했던 것인지,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곪아서 썩을 것 같았다.




저기, 아가야. 여기 앉아 볼래?




스가는 자기가 앉아 있던 바위에 아이를 번쩍 들어 앉히고는 가방을 뒤져 종기 치료약을 꺼냈다. 다행히 세 번 정도 쓸 양이 남아 있었다. 막대로 약을 떠서 아이의 환부에 조심스럽게 발라 주자 아이가 쓰라린 듯 징징대는 소리를 냈다.




켄타로! 얘가 어디...!”




멀리서 팔다리를 걷어붙인 남자 하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들을 발견했다. 스가는 서둘러 약을 가방에 넣어 숨겼다. 남자는 발을 쿵쿵거리며 성난 듯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발소리에 스가는 자신의 심장도 쿵쿵대는 것을 느꼈다. 저런 식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너무 무서웠다. 달아날 생각으로 가방을 메려는데 남자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아빠!”


켄타로! 당신, 아까 내 아들한테 뭔 짓을 했지? 똑똑히 봤어!”


... 이거 놓으세요.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여!


아빠, 아니야! 저 형이 나 약 발라 줬어!”




아이가 옷자락을 들어 아버지에게 배꼽을 보였다.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이의 배를 보더니 깜짝 놀라 아들과 스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종기가...?”


저 형이 무슨 약을 발랐는데 아픈 게 쏙 들어갔어! 저 형은 마법사야!”




스가는 가방끈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여차하면 장애 마법을 쏘고 뛸 참이었다.




마법사?”




남자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당신은 의사요?”


“...”


미안하게 됐수다. 아들을 공격하는 줄 알고...”


“...”


, 의사라면 말인데, 식사랑 숙소를 대접할 테니 우리 마을에 큰 어르신이 많이 아프신데 좀 도와주고 갈 수 없겠소? 마을 사람들이 다 좋아 뫼시는 분이라 꼭 병이 낫으셨으면 좋겠어서 그러우. 여긴 의사 보기가 힘든 촌구석이라...”




남자는 머쓱한 듯 스가의 어깨를 잡았던 손을 놓고 다소 불안한 얼굴로 살피듯이 말을 꺼냈다. 스가는 손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아주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나 같아도 아들이 모르는 사람에게 배를 보여주는 것 같으면 놀라서 달려오겠지. 딱 하루만 묵고 간다면 별 일이 있을까 싶었다. 스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행히 환자의 상태는 스가의 마법으로 치료가 가능한 정도였다. 스가는 방 하나를 빌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잠그고는 냄비를 꺼냈다. 약초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후로는 그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이방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탓이었다. 재료를 넣고 약불에 냄비를 지글지글 끓이다 약이 녹색으로 변하자 스가는 지팡이를 들어 몇 가지 주문을 외었다. 옅은 연두색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트롤의 코딱지를 냉이즙에 비빈 것 같은 약을 환자에게 가져가자 환자는 숨을 쌕쌕 몰아쉬면서도 미심쩍은 눈으로 스가를 한 번 바라보았다. 괜찮으니 드세요. 환자의 목구멍으로 약이 꿀떡꿀떡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 정말 신기하구만, 어떻게 금세 열이 내릴 수가 있나?”


도대체 뭘로 만든 약이오?”




마을 사람들이 신기한 듯 편한 얼굴로 자고 있는 환자의 방에 몰려들어 저마다 스가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스가와 만났던 남자아이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내가 말했잖아요. 저 형은 마법사라고.”

 












* * * * *


- 다이아몬드 에이스 X 하이큐!! 크로스오버


- 해리포터 au





유우키 테츠야 x 이사시키 준 x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테츠준크리)

사와무라 다이치 x 스가와라 코우시 x 아즈마네 아사히 (다이스가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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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억 조작의 시대 (2)










곤란을 겪으셨겠습니다.”


뭘요. 고생은 그쪽이 더 했겠죠.”




퇴근 시간이 가까워 어수선한 마법부 복도를 준은 다이치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 뒤를 마츠카와와 시라카와가 훈련된 닌자처럼 발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따랐다. 다이치는 살짝 미소를 띠고서 준의 부루퉁한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실력이 굉장하시던데요. 거리 전체에 방어 마법을 걸 정도라니.”


“....그냥 잔재주죠. 오러국엔 그만큼 하는 사람 널려 있을 텐데.”


아뇨. 지금 저희 뒤에 있는 저 둘도 방어는 잘 못 합니다.”


나는 원래 전방이다




마츠카와가 피식 웃으며 받아치자 다이치도 하하 웃었다.




이대로 가게로 돌아가십니까?”




다이치는 준을 오러 사무국 안으로 안내했다. 무죄 방면되었지만 피고가 직접 서명해야 할 서류가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은 온갖 어둠의 마법 관련 기구들이 즐비하게 놓인 사무실을 신기한 듯 휘 둘러보며 대답했다.




그래야죠. 문 닫은 지 4일이면 이 달은 뭔 짓을 해도 적자라고요. 이상한 일에 휘말려서 사람 열 받게. 국장님처럼 조금만 조사해도 내가 결백하단 거 다 알았을 거 아닙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갈수록 점점 더 사법 처리가 허술해지고 있는지라. 마왕과 데스이터에 대한 공포가 하루가 다르게 퍼지다 보니 마법부도 뭔가를 해야만 하는 처지죠. 아마 그 검사도 꽤나 급했을 겁니다.”




준의 얼굴이 굳었다. 다이치는 그의 안색을 슥 살피고는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준은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양 손을 모아쥐었다. 다이치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책상에서 서류철 몇 개가 휙 날아와 손에 쥐어졌다. 그는 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양피지를 넘겼다.




이사시키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좋으실 대로.”


“갑작스러운 청이지만 오러국에 특채를 지원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시라카와가 건네준 음료를 마시려던 준은 기침을 하고 말았다. 엄청난 말을 뱉은 것 치고는 다이치의 얼굴은 얄미울 만큼 환했다. 준은 입가에 흘린 음료를 닦으며 다이치를 빤히 쳐다보았다.




농담이죠?”


아닙니다. 솔직히 이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이사시키 씨의 방어 능력이 탐이 났습니다.


“....”


저희는 늘 인력난에 시달리는 처지거든요. 괜찮으시다면 가게를 처분하는 것을 도와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준은 다이치의 시선을 피했다.




난 오러 안 합니다.”


당신이 쿠로오 테츠로와 만났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죠?”




마법에 걸려 비가 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던 시라카와가 손에 들린 커피를 쏟았다. 팔짱을 끼고 흥미롭게 그들을 지켜보던 마츠카와도 눈썹을 치켜올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준은 동작을 멈추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이치의 말을 귀로 받아 이해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머리가 맑아지는 마법에라도 걸린 양 머리는 팽팽 돌고 심장은 쿵쿵 뛰어댔다. 




협박하는 겁니까?”


“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저는 당신이 아즈카반에 들어가길 원하지 않아요. 당신이 데스이터한테 협력한다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럼?”


하지만 이사시키 씨가 어딘가 데스이터와의 고리를 갖고 있다는 건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그 고리가 오러국장인 저로서는 욕심이 나거든요.”




이 정도면 솔직한 답이 되었을까요? 다이치는 빙긋 웃었다. 준은 인상을 찌푸리고 다이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이치는 마치 소년 같은, 어딘가 순수한 표정으로 그와 시선을 부딪치고 있었다. 준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다이치가 앞에 밀어준 양피지와 깃펜을 집어들었다.




마법부랑 엮이는 건 싫습니다.”


왜요?


그쪽 사람들 안 좋아해서.”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양피지를 다이치 쪽으로 던지듯이 밀어놓은 채 준이 벌떡 일어서자 팔짱을 끼고 창문에 기대서 있던 시라카와가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다이치는 여전히 온화한 눈으로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왕에 대한 공포가 퍼지고 있으니 마법부도 뭔가 해야만 하는 처지라고 하셨습니까?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 나가죠. ‘안타까운 일? 안타깝기만 해서 좋겠군요. 누명을 풀어 준 건 고맙지만 그 이상 엮이는 건 사양입니다. 오늘 일은 감사했고 서류 거기 있습니다.”




준이 성큼성큼 걸어 사무실 문을 열자 얼결에 마츠카와는 피하듯 자리를 옮겨주었다. 다이치는 살풋 웃으며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입을 열었다.




기억을 못 하시는 것 같지만 저희는 구면이더군요.”


“....?”


제가 유우키 선배를 참 좋아했거든요.”


"!"



준의 걸음이 멈췄다.




선배를 만나러 갈 때면, 늘 그 옆엔 짧게 턱수염을 기른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그 분과는 제법 친하지 못했지만... 그 친구가 바로 이사시키 씨였다는 게 이 사건을 조사하던 도중 기억이 났습니다.”




준은 천천히, 슬로우 모션처럼 다이치를 향해 뒤를 돌았다. 짧고 검은 머리카락과 강하고 뚜렷한 이목구비. 충격을 받아 속이 역류할 것 같았다.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준 역시 그때 그를 닮은 소년이 하나 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제야 호그와트 교정에서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당차게 말을 걸던 소년의 얼굴과 지금 자신의 앞에 앉은 오러국장의 얼굴을 매치할 수 있었다. 충격으로 얼룩진 표정을 하고 준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다이치는 아차 하며 말을 덧붙였다.




“....이 이야기는 힘드실 텐데 죄송합니다. 저도 장례식에 갔었는지라....”


테츠를 이용해서 날 끌어들일 생각이면 험한 꼴 보기 전에 포기해.”




준은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단호하게 몸을 돌려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음이 사무실 안에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


왜 저래? 유우키 얘기는 뭐고 마법부는 또 왜 저렇게 싫어해?”




마츠카와가 문을 힐끗 바라보며 준이 앉아 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그가 마시던 음료를 쓰레기통으로 날려 보냈다. 시라카와도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마츠카와의 말에 동의했다. 다이치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준이 서명한 양피지를 한번 훑어본 뒤 옆 자리에 던져두었다.




저 사람은 그럴 만도 해. 기록을 봤는데, 아버지가 한 번 억울하게 아즈카반에 잡혀간 적이 있더군.”


무슨 일로?”


어둠의 마법 관련해서. 이가이나 장관 때.”


분위기 무지하게 살벌했을 때 아냐?”


그래. 오러들이 길 가다가도 아무나 턱턱 잡아들이던 시절이지. 문제는 저 사람 아버지가 머글이었거든.”




마츠카와가 허, 하는 소리를 냈다.




머글을 막 잡아가?”


그땐 그러던 때니까.


유우키 얘기는 뭔데? 그 사람 죽은 지 몇 년 됐잖아?”


마츠카와 너도 기억 안 나나 봐? 학교 다닐 때 둘이 엄청나게 친했어. 그런 소문도 있었는데 유우키가 하도 힘센 집안이라 묻혔지.”


전 슬리데린이긴 했어도 유우키네 첫째라면 기억하는데, 얼굴 보니까 그때 같이 다니던 친구가 맞는 것 같긴 하네요.”




다이치는 소파 등받이에 깊게 몸을 기대며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저 이사시키란 사람은 좀 힘들겠다.”


하지만 차관님이 무조건 데려오라고 하셨잖아요.”


힘들겠다고 했지 포기하겠다고 하진 않았어. 그 방어 능력 솔직히 정말 탐나지 않아? 어떻게 1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혼자서 거리 전체를! 영역이 무려 1km2에 달했다고. 그런 거 할 수 있는 사람 저기 미스터리 부서의 오이카와 토오루 말고는 본 적이 없어.”


“이봐. 핵심은 그게 아니지, 국장님.”




마츠카와는 다이치를 향해 앉은 몸을 기울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쿠로오 테츠로에 대한 얘긴 뭔데?”




잠시 마츠카와의 시선을 맞받아친 다이치는 찻잔을 톡톡 쳐서 찻잔이 설탕통 옆에 가서 앉게 만들고는 사무실 창문을 바라보았다. 시라카와의 시선도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에 대한 말을 듣고도 진심으로 이사시키 준이란 남자가 데스이터에게 협력하지 않고 있다고 믿어?”


믿어. 만약 그 사람이 데스이터의 일원이라면, 이 해프닝이 조작이라는 뜻인데 굳이 자기 사람을 노출시켜 가면서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거든.




대답이 궁한 듯 마츠카와는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이치는 그를 향해 씩 웃고는 옷을 털어낸 뒤 벌떡 일어나 한쪽 벽에 걸려 있는 거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츠카와는 그가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돌리며 나른하게 한쪽 눈을 치켜떴다.




기억 조작을 한 건 진범의 지팡이가 아니었어.




시라카와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아, 그랬었죠- 하고 대답했다. 다이치는 거울 앞에 서서 망토를 한 번 휙 펼쳐 단정히 두르고는 오러 국장 뱃지를 가슴에 다시 고정했다.




기억 조작은 개나 소나 하는 마법이 아냐. 그 진범이란 놈이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 틀림없이 데스이터의 다른 사람이 개입되어 있을 거야. 그것도 고위 마법사가.”


그게 쿠로오 테츠로라고?”


글쎄.”




다이치는 몸을 휙 돌려 뭔가 알 듯 말 듯 갸우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오러를 바라보았다. 마츠카와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진범은 미끼야.”


미끼?”




잠시 다이치의 눈에 무언가가 번득였다. 그는 허리를 곧추세운 채 차분한 발걸음으로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그 뒤에서 시라카와와 마츠카와가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이치는 등을 돌린 채 입을 열었다.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꼭 일부러 잡히라고 밀어넣은 것 같이."


"....."


난 그걸 알아야겠어. 데스이터 중에서도 고위직인 놈들이, 우리 오러들의 눈에 띄게, 이사시키 준이라는 민간인 남자 곁에 나타나는 이유가 뭔지.”




짙은 남색의 망토가 흩날리며 사무실을 뒤로하고 문이 닫혔다. 다이치는 숨을 한번 깊이 들이마시고 주먹을 쥐었다.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맑았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어야만 한다면, 미지와 두려움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나는 지금처럼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잡아당길 것이다. 문 너머에 내가 보아야 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것이 어둠의 마법과 싸우는 오러들의 수장이 할 일이었다. 그는 문을 등진 채 꽉 쥔 주먹과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스가.

 

 

 

 

 

 

 




* * * * * * *





- 다이아몬드 에이스 x 하이큐!! 크로스오버

- 해리포터 au



유우키 테츠야 x 이사시키 준 x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사와무라 다이치 x 스가와라 코우시 x 아즈마네 아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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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 조작의 시대 (1)








 



그만! 배심원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신경질적으로 의사봉을 두드리는 소리가 원형의 심문장에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찬물을 끼얹은 듯 잦아들었다. 커다랗고 무거운 방 한가운데 놓인 쇠사슬이 철커덕거리는 나무의자, 그리고 사납게 생긴 남자 하나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오만하리만치 높은 재판장의 자리를 쏘듯 올려다보았다.




피고는 지금부터 묻는 말에 진실하게 대답하도록.”




재판장은 의사봉을 내려놓고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두꺼운 종이 뭉치를 향해 눈을 돌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자의 남자에게로 쏟아졌다.




피고 이사시키 준. 다이애건 앨리 33-8번지에서 마법생물 판매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상인. 범죄기록은 없으며 기소된 것도 이번이 처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폴리주스 마법약이나 변신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본인이 맞는가?”


맞습니다.”




몹시 기분 나쁜 표정을 한 남자가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팔걸이에 그의 팔을 묶어놓고 있는 쇠사슬이 위협적으로 철컹 하는 소리를 냈다.




피고는 이번 재판에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다. 맞는가?”


맞습니다.”


피고는 지난 12일 그리엣 가에 어둠의 표식을 소환한 유력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으며, 현재 소위 데스이터라고 불리는 범법집단과 연루된 혐의로 기소되었다. 맞는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봅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나는 연루자가 아니라 목격자라니까. 빌어먹을. 남자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욕설을 궁시렁거렸다. 자리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며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검사가 벌떡 일어서더니 재판장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발언을 신청했다. 재판장이 허락하자 그는 거만한 자세로 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 본안의 핵심은 여기 앉아 있는 피고가 데스이터 조직과 행동을 함께하는 일원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인명피해가 있었던 만큼 이는 일반적인 범죄와는 다른 아주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데스이터의 일원이라고? 준은 검사를 향해 눈을 부라려 보였다. 그 날 사고 현장에서 바로 구속되어 수갑을 차고, 마법부 지하에 임시 수감된 후 지금 전원 배석 재판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사흘이었다. 꽤나 조급했던 모양이지. 마법부 놈들이란 원래 그런 족속들이니까. 하지만 그는 단언컨대 결백했다. 준은 등을 곧추세우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 손목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거추장스러웠다.




피고는 제가 하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에 따라 유죄의 여부와 형량이 결정되므로 부디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검사는 옷깃을 뻣뻣하게 세우고 뒷짐을 진 채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잔뜩 기울인 채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4일 전 812일 토요일 오후 4시경, 피고는 그리엣 2번지에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지만, 저는 그곳에 그라인딜로우를 배달하러


“420분경, 그리엣 2번지에서는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고 근처를 지나가던 머글 다섯 명과 마법사 두 명이 폭발에 휩쓸렸습니다. 피고는 그 폭발을 기억하십니까?”


똑똑히 기억합니다. 하지만...”


피고는 그 곳에서 짧은 결투를 벌였습니다. 맞습니까?”


“.... 싸웠는데...”




이미 그를 범인으로 확정해둔 것 같은 검사의 말투에 준은 답답하다는 듯 발을 꿈지럭거렸다. 무죄 추정의 원칙 따윈 이 망할 놈의 마법부에선 도무지 지켜지지 않는 건가? 준은 천식 환자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말입니다. 저는 범인의 얼굴을 봤습니다. 저는 목격자고, 무고한 시민이에요이 자리에서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

피고는 이 사람의 얼굴을 기억합니까?”




검사는 무심하게 준의 말을 끊고는 주머니를 뒤적여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앞니가 뾰족하게 길고 쭉 찢어진 눈에 쥐 수염이 돋아 있는 남자였다. 준은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바로 이 놈이에요! 이놈이 제게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 주변에 전부 방어 마법을 걸었던 게 저라구요. 틀림없이 어둠의 표식도 이놈이 불러냈을 겁니다! 아니 아시면서 왜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진의 남자는 피고가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에 휘말려 지금 근처의 머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마법사입니다. 이 마법사가 상해를 입는 장면을 목격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재판장에게 사진을 건넨 검사가 참관석을 향해 손을 뻗자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뒤뚱거리며 걸어 나왔다. 준은 입을 딱 벌린 채 황망한 표정으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전개에 저절로 이가 부드득 갈렸다. 빌어먹을, 이게 뭐야.




증인들은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검사는 두 사람을 준의 오른편 앞쪽 의자에 앉히고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감자처럼 배가 볼록 튀어나온 남자는 불안한 듯 눈알을 굴리다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그리엣 2번지에 사는 주민으로, 하르모니아 염색약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부부입니다. 그 날, 평소처럼 땅콩버터와 맥주를 사서 집에 돌아가던 중 큰 폭발음이 들렸고, 지금 의자에 앉아 있는 저 남자가 하수도를 폭발시키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사람 여러 명이 날아갔어요.”


.. 맞아요. 사진의 마법사가 저 남자를 향해 달려왔고 저 남자는 그에게 저주를 쓰려고 했어요.


저희들과도 눈이 마주쳤지만 저희들을 따라오진 않았어요.”




준은 말문이 막혔다. 기가 막혀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혹시 저 사람들에게 내가 돈이라도 떼먹었던가. 아니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엄청 큰 잘못을 저질렀었나? 이렇게 나를 엿 먹일 이유가 있어? 울분이 치밀어 혹시나 저 부부를 예전에 만난 적이라도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들끓는 화를 진정하려 숨을 고르면서 증인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상하게도 그들은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사진의 마법사가 그곳에 방어 마법을 걸어 거기 있던 사람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저 남자에게 기절 마법을 맞히려고 했지만 빗나갔어요.”




준은 순간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분명 자신이 그 주변에 방어 마법을 쳤고, 사진 속의 남자에게 기절 마법을 쏘았고, 빗나갔음을 기억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증인들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저 남자는 상대에게 맞받아 기절 마법을 쏘았고 사진의 마법사는 그것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저 남자는 하늘을 향해 어둠의 표식을 쏘았어요. 그 후로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끔찍해서....”




여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덜덜 떨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검사는 여자를 부축하며 그들을 다시 참관석으로 올려 보냈다. 준의 머릿속에 불쾌한 확신이 스쳤다. 기절 마법을 맞고 쓰러진 것은 사진의 남자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정신이 들어 보니 그는 참담한 사고 현장에 누워 있었고, 달려온 오러들에게 그곳에서 곧바로 체포된 것이었다. 검사는 망토에서 수첩을 꺼내 몇 자 적고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다 고개를 휙 돌렸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현장의 증거와 증인들의 증언으로 판단하건대 피고의 유죄를 확신하며, 마법사 보안법 위반과 살인 미수 혐의를 적용하여 아즈카반 50년 형을 청원합니다. 또한 피고는 데스이터의 다른 구성원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이건 조작이야!”




준이 목소리를 짜내 외치자 검사가 다시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작?


저들의 증언은 분명 당시 상황과 일치합니다. 저와 사진 속 마법사의 행동이 정확히 반대로 바뀌어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죠! 이것은 고도의 기억 조작으로....”


제가 당신의 유죄를 확신하는 이유는, 사실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고도 당신이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검사는 품속에서 지팡이 하나를 꺼냈다. 준은 그것이 체포 당시 압수된 제 지팡이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검사는 준의 지팡이와 자신의 지팡이 끝을 맞댄 채 주문을 외웠다.




프리오리 인칸타토!”




준의 지팡이에서 옅은 은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입에서 뱀을 내뿜는 해골의 형상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약한 비명을 내질렀고 재판장은 소스라치게 놀라 헛기침을 하며 형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준은 삽시간에 얼굴이 굳어진 채 멍하니 제 앞의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사가 지팡이의 연결을 끊자 해골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어둠의 표식을 부른 게 이 지팡이라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29cm, 적송, 유니콘의 꼬리털. 피고의 지팡이가 맞죠?”


“...잠깐만... 나는 분명히...”


이봐. 이제 발뺌할 생각 말라고. 차라리 여기서 끝나면 다행일지도 몰라... 당신과 쿠로오 테츠로가 만나는 것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검사가 의자 팔걸이를 손으로 꽉 움켜쥔 채 준의 눈앞에서 으르렁거렸다. 준은 마치 판단능력이 사라진 사람처럼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 테츠로의 이름이 나오자 참관석이 아까 해골을 봤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게 술렁거렸다. 검사는 팔을 치켜들고 준이 앉은 의자 주위를 뱅뱅 돌며 목청을 높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쿠로오 테츠로는 소위 데스이터의 리더라 하는 네 번째 배트의 오른팔로 잘 알려져 있는 위험인물입니다. 에일린 부부 살해사건, 오베트 머글 일가 실종사건, 부잉교 폭파 사건 등의 유력 용의자죠!”


 “...그 쿠로오 테츠로...?...”

 “그래. 나도 들어본 적 있어...”


여기 있는 피고 이사시키 준은 그 쿠로오 테츠로와 접촉한 적이 있으며 데스이터의 활동에 도움을 주었다는 혐의 또한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조작이라는 말이 나옵니까?




준은 떨리는 손을 간신히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쿠로오 테츠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검사의 힘찬 웅변이 이명처럼 멀어지고 익숙한, 차분하고 매끄럽고 새까만 음성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


 - 그가 당신을 정말 보고 싶어해.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해서 저러는 거야. 당신도 그를 아직... 아니야? 


디멘터가 들어온 것 같았다.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냉기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분에 차 있던 그의 감정을 무기력하게 식혔다


 - 싫다니 유감이네. 어쩐다, 그가 슬퍼하는 건 썩 보고 싶지 않거든. 그나저나 당신은 왜 그렇게 그를 피하는 거야? 한때 엄청 찐한 사이였다고 들었는데... 사실 그가 당신을 강제로 끌고 오라지 않는 게 나한텐 좀 신기해서. 


라디오의 음량이 줄어드는 것처럼 귀에 맴돌던 소리가 작아지면서 디멘터의 역겨운 숨 냄새가 싸하게 그를 가라앉혔다.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와 뇌의 일부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그래서 저는 마법 세계의 수호라는 검사의 사명을 안고 피고의 악랄한 진면목을 이 재판에서 전부....”




항변해야 하나. 준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쳐다보았다. 싸늘하고 공격적인 표정들을 보니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쿠로오와 만났다는 것은....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사실이야. 한구석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패트로누스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디멘터의 공격에서 보호하고 있었다. 말해봤자 소용없으려나. 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때 거기에 있지 말걸, 하는 후회가 밀려와 억울할 지경이었다. 그래, 그 때도 그랬어.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어.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들고 기분이 물 먹은 것처럼 빠르게 무거워지는 것을 보니 디멘터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듯했다. 슬쩍 곁눈질을 하자 디멘터의 까만 두건과 그 밑으로 드러난 징그러운 손이 보였다. 이대로 저 손에 끌려서 아즈카반에 가게 될까, 아버지가 그렇게 끌려갔듯이. 차라리 쿠로오가 찾아왔을 때 그대로 따라가버릴 걸 그랬나. 아니, 내가 아즈카반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면 나를 구하러 와 줄지도...


눈을 꼭 감고 온몸을 움츠리고 있던 준은 문득 벽난로 앞에 앉은 것처럼 몸이 보송하게 마르는 것을 깨닫고 흠칫 놀랐다.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듯이 주위를 맴돌던 디멘터가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세차게 뛰어대던 심장박동이 안정을 찾고 싱그러운 흙 같은 기운과 냄새가 온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은빛의 패트로누스가 뿜어내는 선한 결계가 그를 빠르게 감쌌다.


까마귀.




재판장님! 존경하는 재판장님! 판결을 잠시 멈춰 주십시오!”




푸르스름하게 검은 망토가 휘날리며 준의 시야를 가렸다. 한 사람이 다급하게 목청을 높이며 심문장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 얼굴을 본 사람들이 크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망토 안에서 신분증과 지팡이를 꺼내 높이 치켜들고 재판장 앞에 섰다. 준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숨을 헉 들이마셨다. 짧고 까만 머리칼이 조명을 받아 금색처럼 빛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오러국 국장 사와무라 다이치입니다. 본심의 피고 이사시키 준의 변호인으로써 발언권을 요청합니다.”




재판장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한 손으로 코안경을 눈가에 올렸다.




피고는 특별히 변호인을 요청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소만.”


그렇습니다만, 법적으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는 언제든지 증인이나 변호인을 내세울 수 있으며, 형사재판의 경우 오러국장은 피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호인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피고는 누명을 쓴 것이 맞습니다. 이쪽이 진범입니다.”




사내가 몸을 돌리고 심문장 입구를 향해 팔을 뻗었다. 사내의 온화하고도 강인한 이목구비가 준의 시야에 들어왔다. 닮았다, 그리고 낯이 익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기억을 더듬는데 문이 열리고 오러 두 명이 한 남자를 양쪽에서 붙잡고 들어왔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크게 술렁거렸다. 아까 사진 속의 그 남자였다.




수고 많으십니다- 피의자 호송을 맡은 오러 마츠카와 잇세이-”


시라카와 카츠유키입니다. 국장님.”




남자를 붙잡고 들어온 오러들이 망토 안에서 오러 신분증을 꺼내 재판장에게 보여주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허공에서 의자를 꺼냈다. 자신을 오러국장이라 소개한 사내가 그 의자에 남자를 앉히고 밧줄로 몸을 묶는 광경을 검사와 준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오러국의 진범 체포 경위를 보고드리겠습니다.”




다이치는 재판장 앞에 한 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한 손으로는 양피지를 꺼내든 채 열중쉬어 자세로 섰다.




어제 저녁 피의자가 입원해 있던 머글 병원에서 피의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오러 한 명이 확인을 위해 위장잠입을 했습니다. 그러나 병원 영안실에도, 머글들이 빈소라고 부르는 장례식장에서도 피의자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저희 오러들은 피의자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국장. 사망 소식이 있었단 말입니까? 듣지 못했는데요?”


원칙적으로, 어둠의 마법 사고과 관련된 소식들은 오러국에 제일 먼저 전달되는지라 듣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다이치는 어깨를 으쓱했다.




피의자는 급하게 도주한 탓이었는지 병원 침대에 순간이동의 흔적을 남겼고, 우리 능력 있는 오러들이 (다이치는 마츠카와와 시라카와가 서 있는 쪽을 흘긋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피의자를 찾아내 왜 거짓 사망 신고를 했는지 탐문했고 지팡이를 검사했습니다. 그의 지팡이에 역주문 마법을 실행한 결과 가장 최근에 폭발과 기절 주문을 발사한 것이 드러났고, 분석해 보니 폭발의 규모는 그리엣 가 사고의 규모와 일치했습니다.”




다이치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자 조금 전의 해골 형상처럼 연기로 이루어진 형상이 심문장 안에 나타났다. 저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 형상은 쭈뼛거리는가 싶더니 반쯤 우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음을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준의 지팡이로 어둠의 표식을 만들었다는 진술이 나오자 검사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다이치는 형상을 지팡이 속으로 빨아들인 뒤 범인에게 다가가 그의 오른팔을 걷어 보였다. 까맣게 새겨진 어둠의 표식을 확인한 재판장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이 표식을 교묘하게 숨기고 있었습니다. 어둠의 마법 사건을 다루면서 이 정도 확인도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문신이 나온 이상 상황을 뒤집을 만한 것은 없었다. 검사는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입만 뻐끔대다 겨우 말을 꺼냈다.




“...그럼 증인들의 진술은 어떻게 된 겁니까?”


증인이 있었습니까?”




다이치가 의외라는 듯이 돌아보자 검사는 아까 증언했던 부부가 있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니까 기억 조작이 있었던-”


기억 조작을 했다.”




답답함에 쏘아붙이던 준의 목소리가 범인의 우물거림에 묻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고 범인은 준을 기절시킨 뒤 주변 목격자들에게 기억 조작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조금 전 증언하러 나왔던 여자가 충격을 받아 흐느끼는 소리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심문장에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범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이치는 다시 뒷짐을 진 채 재판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준은 그의 표정이 뭔가 알쏭달쏭하다고 생각했다.




즉 여기 앉아 있는 피고의 무죄 방면을 청원합니다, 재판장님.”




재판장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오른편에 앉은 서기관을 한 번 돌아보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검사는 떫은 감을 씹은 얼굴로 준과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피고 이사시키 준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진범에겐 마법사 보안법 위반과 살인미수 혐의로 아즈카반 50년 형을 선고한다.”




의사봉이 내려가자 디멘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이 있는 심문장 한가운데로 들어왔고, 준은 다이치의 억센 손에 팔이 붙들려 의자에서 일으켜졌다. 다이치가 급히 준을 끌어당겨 자신의 뒤에 숨기자 디멘터들은 체념한 듯 앉아 있는 진짜 범인에게 다가가 그의 양팔을 붙잡고 미끄러지듯 심문장에서 나갔다. 굳이 사이에 서 있어야 한다면 디멘터보다는 오러들이 낫지, 하고 준은 다이치의 어깨 뒤에서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렸다.

자료 정리와 재판장의 몇 마디가 있은 후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참관인들과 배심원들이 하나 둘 퇴장하기 시작했다. 준은 나가기 전 검사에게서 지팡이를 돌려받았다. 검사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나를 어지간히 잡아넣고 싶었던 모양이지? 준은 냉소하며 바지자락에 지팡이를 열심히 문질러 닦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지팡이를 마음대로 만지는 건 정말 싫었다. 그제야 풀려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 * * * *







- 지난 이야기 [패션쇼의 시작의 단], [5학년의 전원집합의 단], [패션쇼 예산회의의 단], [1학년 하반의 회의의 단] 에서 이어짐

 

 

 

- 케마이사

- 몬센

- 쵸코헤쵸

- (약간) 단쇼

 

 

 

 

 

 

 

 

 

 

[6학년 올캐러 중심]

패션쇼의 개최의 단

 

by. 카루린다카렌

 

 

 

 

 

 

 

 

패션쇼 개최 준비로 시끄러웠던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실수로 키하치로가 옷을 찢은 걸 본 타키야샤마루가 드물게 분노 게이지 100% 상태가 됐다거나, 염색을 한답시고 쌍닌이 하치자에몽의 머리에 덤벼들었다가 타카마루한테 빗으로 앙갚음 당했다거나, 사몬이 옷을 잃어버려서 사쿠베가 친히 구덩이에 파묻었다거나, 키리마루가 여염집에서 공짜로 얻은 천들을 학원생들한테 팔았다거나...) 한 주가 지나가고 드디어 개최 당일날이 되었다. 새벽닭이 여명을 알리고 잠에 취한 헤무헤무의 잠에 취한 것 같은 종소리가 울리자 학원은 달걀에서 병아리가 깨어나듯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웬일로 일찍 일어난 코마츠다는 요시노 선생님과 함께 학원 대문에 『 패션쇼 대회 』플래카드를 건 후 레드카펫을 깔았다. 양치하러 가다가 그 광경을 목격한 야마다 선생님과 도이 선생님이 "오늘 외부인도 출입해요?!" 하고 묻자 코마츠다는 "원장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셔서..." 라고 대답했다. 도이 선생님은 이곳이 닌자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외부인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졌다. 

 

 

 

 

 

 

 

 

 「 아. 아. 원장실에서 알립니다. 오시(오전 11시~ 오후 1시)가 되면 학원생 전원은 뜰로 집결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오늘 하루를 준비하던 닌술학원 전체에 원장선생님의 방송이 들려왔다. (닌타마 란타로에서 무로마치 시대에 다중방송 가능한 확성기가 어떻게 존재했나요? 라는 질문을 하면 지는거다.) 수돗가에서 양치질을 하던 토메사부로는 입을 헹군 물을 시원하게 바닥에 흩뿌렸다. 물방울이 튀어 몬지로가 정색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드디어 일주일 간 준비했던 패션쇼를 선보일 날이 왔다! 이사쿠는 자기보다도 먼저 일어나 밥을 먹으러 나갔었으니 지금쯤이면 방 안에서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었다. 토메사부로는 한달음에 기숙사로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이사쿠!"

 

"응?"

 

 

 

 

 

 

 

 

 

 

 

 

 

 

꿀꺽.

 

토메사부로는 기모노를 입고 머리를 풀어내린 채 화경으로 얼굴을 비춰 보는 이사쿠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입술색을 찍어 바르고 있던 모양인지, 이사쿠는 어린 소년처럼 미소를 띠고 화경을 가리키며 쿠노이치들에게 빌린 것이라 했다. 여장할 거라고 그러니까 비웃는 건지 한참을 깔깔대더니 그럼 연분지도 필요할 거라면서 몇 첩 가져가라 하더라고. 이사쿠가 쑥쓰럽게 머리를 긁적이자 토메사부로는 약간 가슴이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이사쿠."

 

"왜?"

 

"엄....왜 평소 여장할 땐 그렇게 화장 안 해?"

 

"응? 나, 지금 평소처럼 화장 하고 있지 않아?"

 

"전혀....아닌데?!"

 

"그래?? 왜 그러지...?? 분명히 평소랑 똑같은데...?? 흐응, 토메사부로, 나 이상해서 그래?"

 

 

 

 

아, 아냐!!! 훨씬 좋아!!!! 하나도 안 이상해!!!! 훨씬, 훨씬 훨씬 예뻐!!!! 그니까, 평소에 니가 안 예쁘다는 건 아니지만, 안 이상해, 전혀, 절대로!!!! 토메사부로는 열심히 손을 내저었다. 이사쿠는 그렇다면 다행이야, 하고는 다시 입술을 바르기 시작했다. 저런 화장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대체 이제까지 본 그 괴랄한(..) 쿠노이치 변장에 여장들은 다 뭐였는지 급 궁금해졌다. 이사쿠의 저 모습을 닌술학원 모두가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괜히 열이 받는 토메사부로였다.

 

 

 

 

드륵ㅡ

 

 

"이사쿠, 토메사부로ㅡ"

 

"뭐야!"

 

 

때문에 문이 예고없이 열리자 급히 토메사부로가 뒤돌아서 쿠나이를 겨눈 것은 과장된 반응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는 ㅡㅡ' 하는 표정으로 쿠나이를 들어올린 토메사부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역시 여장을 마친 센조였다.

 

 

 

 

 

"호오,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냐? 몬지로랑 싸우는 걸로도 모자라서 같은 방인 나까지 때려 눕히시겠다?"

 

"....ㄱ....그런거 아냐!!! 잠깐 긴장해서 그랬어."

 

"대단한 긴장 납셨네. 쿠나이나 내려, 선단 공포증 생기겠다. 준비 끝났으면 빨리 예행연습 해 보게 나와. 오시까지 아직 이 각(1시간) 정도 남았어. 분장한 거 지울 시간도 필요하니까 최대한 빨리 해야돼."

 

"알았어, 근데 아직 안 끝났어. 나도 옷 갈아입어야 돼. 미안, 좀만 기다려봐."

 

 

 

 

 

토메사부로는 한번 이사쿠를 쳐다보다가 재빨리 대답하고는 센조의 면전에서 문을 닫았다. 센조는 다소 어이 없는 얼굴로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던 몬지로를 돌아보았다. 상투를 틀어올리고 건장한 노동자(...)로 변장한 몬지로는 뭐가 불만인지 그늘에 숨어 있었다.

 

 

 

 

 

 

"쟤 왜 저러냐?"

 

"하여간 용구위원장, 행동 굼뜬 걸로는 이 학원 최고지."

 

"ㅡㅡ 그러는 몬지로 너는? 누가 여장할지 결정하는 걸로만 이틀 넘게 걸렸구만..."

 

"야, 센조, 솔직히 당연히 니가 여장하는거 아니었냐? 이 닌술학원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라, 니가 한다고 하나 내가 한다고 하나! 누가 봐도 니가 여장한게 훨씬 자연스럽고 예, 예쁘고ㅡ"

 

 

 

 

 

순간 몬지로는 말을 더듬으며 눈을 돌렸다. 그런 몬지로를 투시하듯 쳐다보던 센조는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너,뭐가 웃기냐! 귀가 빨개진 몬지로가 쏘아붙이자 센조는 더 크게 웃었다. 이거 정말 솔직해서 못 쓰겠네. 내가 예쁘디? 센조는 몬지로의 볼살을 잡아 늘리며 킥킥댔고 몬지로는 그런 센조의 눈을 피한 채로 그러지 마, 하고 손을 저었다. 뭐ㅡ, 반응이 이 정도로 귀엽다면 자존심 좀 죽이고 여장을 해준 데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을 법했다.

 

 

 

 

"몬지로. 잠깐 고개 좀 돌려봐."

 

"싫어."

 

"아, 몬지로오. 내가 부탁하잖아."

 

"...왜ㅡ"

 

"오! 몬지로! 센조! 거기서 뭐 하냐!"

 

 

 

 

센조의 입술이 몬지로에게 가 닿으려는 순간 코헤이타의 호쾌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센조는 빡친 얼굴로, 몬지로는 (은근하게 빡친) 미묘한 얼굴로 동시에 코헤이타를 돌아보았다. 정말 유쾌한 아낙네(..)로 분장한 코헤이타가 씩 웃으며 브이를 그려 보이고 있었다. 그 오른쪽 뒤에서 푸른색의 세련된 사무라이 옷을 입은 쵸지가 나타났다. 쵸지는 자기보다 중지손가락 두 개만큼 작은 코헤이타를 흘긋 내려다보고는 무표정으로 왼팔을 들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코헤이타 역시 유쾌한 표정으로 오른팔을 돌려 쵸지의 허리를 껴안았다. 심히 자연스러운 스킨십에 6학년 이반 페어는 다소 충격받은 듯했다.

 

 

 

 

 

".........모소모소모소........."

 

"...엉? 쵸지 뭐라고?"

 

"아!! 쵸지가 말하길 부부라면 더 다정한 스킨십을 해야 하는 거라고,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말라고 하는군!!!!"

 

"뒤 얘긴 내가 한 말이 아냐..."

 

 

 

 

 

 

그때 하반 기숙사의 문이 열리며 다소곳한 기모노를 차려입은 이사쿠와 단조네 가게의 세이하치처럼 운송업자로 변장한 토메사부로가 나왔다. 6학년 전원은 새삼스레 자신들의 내추럴한 변장 실력에 감탄하며 빠르게 예행연습을 마무리했다.

 

 

 

 

 

 

 

 

* * * * *

 

 

 

 

 

"오늘의 패션쇼는 학년별 경기로 진행된다!!! 우승한 학년에게는 5일의 휴식과 새 옷을 지급하도록 하겠다!!!!"

 

 

 

원장 선생님의 의외로 짧은(?) 개회사와 함께 쿠노타마 측에서 해설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은 쿠노타마도 참가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이 있었지만, 그럼 너무 당연히 쿠노타마의 압승이라는 시나 선생님의 뭔가 납득가는 주장으로 무산되었다.)

 

 

시작은 1학년부터였다. 하반의 거지 패션(...)과 이반의 도련님 패션, 그리고 로반의 시종(...)패션은 의외로 꽤나 볼만했다. 물론 눈물을 머금고 신나 있는 거지들을(...)이끄는 쇼자에몽을 보며 도이 선생님이 하필 거지를 선택했냐고 꺼이꺼이 눈물을 흘린 해프닝도 있었다. (내 새끼들이 거지라니!!! 거지라니!!!!) 유일하게 이스케가 쇼자에몽과 함께 쪽팔려해 주었고(...) 단조는 하반과 쇼자에몽을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눈을 번득이며 덴시치와 사키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 둘은 사실 아무 생각 없이 패션쇼를 즐기고 있었는데 말이다) 키리마루는 그 중 제일 신이 나서 으헤헿헿헿헿 하고 웃으며 동전을 받아들었다. (물론 가짜였다.) 

 

 

1학년의 패션쇼가 끝나고 나서 (킨고와 키산타는 온몸에 민달팽이를 붙이고 나와 추가점을 얻었다그리고 차례로 2,3,4,5학년의 패션이 공개되었다.

 

 

2학년은 아예 훈도시만 두른 채 수영 선수로 분장했다. 사부로지의 강한 의견주장과 이러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으나 사콘은 상당히 창피한 모양인지 나뭇잎으로 조금이라도 몸을 가리려고 애썼다. (그걸 본 사부로지는 지금 뭐 하는 짓이냐며 당당하게 앞에 나오라고 사콘을 잡아 끌었다.)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시로베는 눈으로 사부로지를 쫓으며 행동을 따라했고, 큐사쿠는 은근히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본 노무라 선생님은 속으로 패션쇼에 아무것도 입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니!!! 사스가 내 제자들!!! 하며 좋아했다.

 

 

3학년은 전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大田' 이라는 글자가 쓰인 흰색 상의와 3학년 색깔인 연둣빛의 바지였다. 여섯 명이 강단에 나와 일렬 횡대로 차렷을 섰고 (사몬은 옆을 보고 서서 토나이가 잡아주어야 했다) 사쿠베가 대표로 마이크를 잡고 옷에 대해 설명했는데, 고아 설정이라고 하며 '大田(다이다)' 라는 고아원의 아이들이라고 했다. 선생님을 잃어버린 아이들인 척 하면서 울망울망한 눈으로 길을 물어보면 그 누구도 닌타마라는 예상을 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쿠베의 허리에는 사몬과 산노스케를 잡아두는 끈이 묶여 있었다. 화려함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쿠노타마 토모미의 질문에는 마고헤이가 "심플함의 집합이야말로 화려함의 정석이죠!" 라고 대답함으로써 박수를 받았다. (임기응변에 가까웠지만 뭐 나름 괜찮은 대답이었다.)

 

 

4학년은 (예상했던 대로) 3학년과 정 반대였다. 말 그대로 무슨 연예인이라도ㅡ 떠올린 건지ㅡ 머리 모양들은ㅡ 또 왜 그 모양인지ㅡ 요란한 빨간색 상의에 보라색과 흰색이 어울린 하카마, 노리끼리한 겉옷을 두르고 꽃을 조각한 나막신까지 신은 타키야샤마루와 상의와 하카마를 반대로 코디한 키하치로가 (상상 속의) 레드카펫을 걸으며 관객들에게 껍질 벗긴 사탕을 던져 주었다. (키하치로는 약간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둘의 머리모양은 기상천외한 2000년대 동1방신1기의 사자머리였는데, 앞머리 컬은 살아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던져주었다. 뒤이어 나타난 미키에몬과 슈이치로는 위풍당당하고 볼륨감 개쩌는 옷을 입고 있었다. 보형물을 넣어 있는 힘껏 날개처럼 펼친 소매와 바짓단은 약간 바보 같아 보이기도 했다. (본인들은 본인들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는 듯했다) 무엇보다 미키에몬의 헤어스타일은 상당히 경이로웠는데, 그것은 레게 머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평소 복장을 입은 타카마루가 쑥스럽다는 듯이 하하하 웃으며 나타났다. ("저는 미용사에요! 제 작품들이죠! 전 저 자신이 패션쇼의 예술품이라 생각해요!" 패션쇼를 구경온 타카마루의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었다.)이런 복장을 입은 목적이 무엇입니까? 라고 토모미가 묻자 미키에몬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멋지니까!" 라고 답했다. 다른 4학년들은 (스스로의 멋에 심취해서) 그 답을 고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음은 5학년이었다. 4학년의 임팩트 때문에 그닥 눈에 띄지 않을 듯 하다 ㅡ 는 장내의 분위기는 선두로 헤이스케가 등장하자마자 바뀌었다. 단정한 흰색 도복을 입은 헤이스케의 손에는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다. 역시 흰색 도복을 입은 다른 5학년들의 손에도 악기가 들려 있었는데, 사부로는 클라리넷, 라이조는 플루트, 하치자에몽은 색소폰, 칸에몽은 비올라였다. 유랑극단 컨셉을 생각했으며 악기 연주를 공부했다는 말에 모두가 감탄의 휘파람을 불었다. ("그래서 그렇게 5학년 기숙사가 시끄러웠구나!" 하며 이스케가 중얼거렸다.) 착실하게 반별로 이반은 현악기, 로반은 관악기였다. 악기를 어떻게 구매했냐는 질문에 헤이스케는 잠시 움찔하며 (사실 이 패션쇼가 끝나면 5학년들은 전부 일주일 내내 알바를 뛰어야 했다.) 구경하러 온 악기 대여점 아저씨를 소개해 주었다. (무로마치 시대에 어떻게 그런 서양 악기들이 있냐고 묻는 것은 앞서 말한 확성기에 대해 묻는 것만큼이나 쓸데없는 일이다.)

 

 

 

 

 

 

 

그렇게 무난한 패션쇼가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었다. 5학년 등장까지만 보고 분장하기 위해 대기실에 들어와 있던 토메사부로는 이제 드디어 6학년 순서라는 말에 잠시 참고 있던 호흡을 뱉었다. 이사쿠와 센조, 코헤이타는 이미 분장을 하러 가고 없었다.

 

 

 

 

 

 

"어이, 몬지로."

 

"왜."

 

"5일 휴가 받으면 뭐 할거냐?"

 

"단련한다."

 

"멍청한 놈. 니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지금 단련을 무시하는 거냐?!"

 

"가끔은 머리 식힐 줄도 알아야 한다고. 시간 나면 센조랑 얘기나 해 봐라."

 

".....토메사부로 너 무대 나가기 전에 나한테 죽고 싶냐?"

 

"........모소모소모소......"

 

"뭐라구 쵸지?"

 

".......밖이 이상해."

 

 

 

 

 

 

쵸지의 말에 두 사람은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어딘가 다급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군거리는 소리와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뭔가 잘못된 것이 확실했다. 토메사부로와 몬지로는 서로 바라보고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대기실 천막문을 열었다.

 

 

 

 

"....리키치 형?"

 

 

 

 

전열이 흐트러지고 요란해진 대회장 한가운데 다급한 표정의 리키치와 그 팔을 잡고 있는 도이 선생님이 보였다. 리키치는 다급하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토메사부로, 몬지로, 쵸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술렁거리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

 

 

 

 

 

 

 

 

 

리키치가 하는 말을 들은 세 사람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니까, 시간 화약이 묻혔다구! 이 주위에!"

 

 

 

 

 

 

 

 

 

 

 

 

-

 



- 지난 이야기 [패션쇼의 시작의 단], [5학년의 전원집합의 단], [패션쇼 예산회의의 단] 에서 이어집니다

 

 

 - 단쇼

 - (아주 조금) 킨헤이

 

 

 

 

 

 

[1학년 하반 올캐러]

1학년 하반의 회의의 단

 

by. 카루린다카렌

 

 

 

 

 

 

 

 

몬지로의 (따지고 보면 센조의) 판결에 신이 난 것은 1학년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몬지로가 예산회의를 파하고 회계위원(과 눌러붙어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자 1학년을 제외한 모든 학년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자신들의 기숙사로 돌아갔다. 반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단조와 사키치, 쇼자에몽과 히코시로는 안녕히 계십시오!!!! 라는 인사까지 힘차게 하며 머리를 싸매고 누운 몬지로를 두고 방을 나왔다. 문을 닫자마자 네 사람은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얏호오!!! 1학년 예산이 엄청 늘어났다!!!"

 

"타치바나 선배 만세!!!!"

 

"역시 최고참 선배님은 뭔가 다르다니까!!!!"

 

"헌데 쇼자에몽, 하반은 패션쇼 때 뭐 할 거야?"

 

 

 

 

 

 

 

히코시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화기애애하던 네 사람 사이에 전연 긴장된 기운이 흘렀다. 본디 라이벌인지라 사이가 좋지 않은 1학년 이반과 하반이었다. 아무리 학년별로 성적을 매긴다 하더라도 학급 인원 수부터가 많은 만큼, 1학년들은  다른 학년에 비해 반별로 진행될 것이 뻔했다. 단조는 벌써 사키치를 향해 찌릿찌릿한 눈빛을 발사하며 쇼자에몽을 끌고 달려갈 듯 쇼자에몽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쇼자에몽은 어깨에서 단조의 손을 잡아 내리면서 어색하게 하하하 웃었다.

 

 

 

"그....글쎄? 이반은 뭐 생각해본 거 있어?"

 

"어? 어....어어!! 어....글쎄....우리도 곧...얘기해 봐야지!!!"

 

"그...그래! 학년별 경기니까, 좋은 의견 내서 잘 의논해....봐야지!"

 

"으...응! 로반하고도 얘기해 봐야 되고...! 하하하, 가서 애들이랑 얘기하고.... 학급위원장들끼리 만..만나볼까?"

 

"그...그러자! 그럼 어서 가서....얘기하자!"

 

 

 

 

 

 

쇼자에몽과 히코시로가 이야기를 끝내기 무섭게 단조와 사키치는 서로에게 찌릿찌릿한 눈빛을 한번 쏘아주고는 각각 자신들의 학급위원장을 끌고 기숙사로 향하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히코시로와 사키치를 뒤돌아보며 쇼자에몽은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전투말마냥 직진하고 있는 단조를 보니 우습기도 했다.

 

 

 

 

"단.."

 

"쇼자에몽!"

 

"어..왜??^^;"

 

"우리가 뭐 하기로 했는지 히코시로한테 말해주지 마!"

 

"어...엉? 왜? 이건 학년 대회잖아? 아무리 반 팀이라도 같이 의논해야ㅡ"

 

"이반 애들, 틀림없이 우리 하반이 뭘 정하든 간에 비웃을 거라구. 쇼짱이 대표로 가서 무시당하는 건 싫어! 쇼짱이 무시당하는 건 하반이 무시당하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야."

 

"그치만..."

 

 

 

 

단호한 단조의 말에 쇼자에몽은 뭐라 대꾸를 하려다가 픽 웃으며 그만두고 말았다. 히코시로가 자신을 비웃을 것이란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단조가 이해되기도 했고 나름 뭉클하기도 했다. 쇼자에몽은 하반의 아이디어가 절대 무시당하지 않게 열심히 회의를 해 보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에 젖은 탓이었는지 쇼자에몽은 단조의 귀끝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

 

 

 

 

 

 

 

* * * * *

 

 

 

"수련중인 스님이나 도인이 좋아! 아무도 안 건드릴 거 아냐?"

 

"오히려 무사 쪽이 덜 건드리겠지! 그렇게 대놓고 검을 차고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할거 같잖아?"

 

"아 참 산지로, 킨고, 이건 패션쇼라구. 민달팽이들을 어깨에 하나씩 올려놓으면 좋은 패션이 될 텐데."

 

"키산타, 그런 건 패션이 아냐. 차라리 다같이 운송업자 코스프레를 하면 어때? 하카마만 안 입으면 돼!"

 

"아니지 아니지. 그럴 바에야 주먹밥 장수나 엿장수로 변장하면 감쪽 같고 예쁠 것 같은데~"

 

"키리마루 넌 패션쇼를 하고 싶은 거야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거야!"

 

 

 

 

 

....라고 생각했던 쇼자에몽이었지만,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그 작은(?) 소망마저도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 하나 우리들이 열 살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구나. 그리고 이건 패션쇼라구!!! 눈에 안 띄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띄는 것도 중요하단 말이야!!!! 쇼자에몽은 그나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헤이다유와 란타로에게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 글쎄, 아직 생각을 많이 못해봤어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쇼자에몽의 이마에 몬지로마냥 핏줄이 솟았다.

 

 

 

 

"헤ㅡ이ㅡ다ㅡ유ㅡ!!!!!! 졸지 마!!!!!!"

 

"으어?"

 

 

 

눈을 뜨고 졸고 있던 헤이다유는 쇼자에몽의 목소리에 놀라 퍼뜩 깨어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곁에 앉아 있던 킨고가 헤이다유를 받쳐 주었다. 킨고에게 기댄 헤이다유가 혀를 빼문 채 헤, 하고 방긋 웃자 쇼자에몽은 마른 세수를 했다.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이스케가 쇼자에몽의 등을 탁탁 두드려 주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그 꼴을 지켜보고 있던 단조가 입을 열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건 패션쇼잖아. 패션쇼면 눈에 띄는 복장을 해야 되는 거 아냐?"

 

"이사쿠 선배한테 들었는데, 눈에 띄면서 눈에 안 띄는 복장이어야 한댔어."

 

"어떻게 눈에 띄면서 눈에 안 띌 수가 있지?"

 

"눈에 띄면서 눈에 안 띄는 거라면 오바케나 모노노케 같은데?"

 

 

 

 

생각 없이 던진 듯한 란타로의 말에 쇼자에몽을 포함한 하반 모두가 그쪽을 향했다. 란타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당황하며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노, 농담이야, 농담! 담력테스트도 아니고 패션쇼에서 귀신 분장을 하면 좀 그렇지 않겠어? 하하하핳하!"

 

"아냐. 좋은 생각이야."

 

 

쇼자에몽은 단호히 손을 들었다.

 

 

 

 

 

 

"자고로 귀신이란 것은 존재한다고 믿어지지만 결코 그 정체를 드러낸 적은 없는 존재들이지.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눈에 보이기도 해. 만약 적군이 귀신을 본 적이 없다면 귀신 분장을 한 우리를 보았을 때 일단 너무 무섭고 놀라울 테니까 그게 우리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을 거야! 설령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해도 본 적이 있으니까 그 귀신이 우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잠깐, 잠깐."

 

 

 

 

쇼자에몽의 일장 연설에 신베가 제동을 걸었다. 회의 중에 신베가 (먹을 것 이외의) 발언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으므로 모두의 눈이 금세 신베에게로 쏠렸다. 신베는 말을 가로막고 나선 게 쑥쓰러운지 몇 번 헛기침을 했다.

 

 

 

"그치만 귀신으로 변장한다면, 가다가 누구랑 부딪히거나 넘어지면 어떻게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베가 엄청 오랜만에 일리있는 말을 하네. 나도 귀신 분장은 좀 어렵다고 봐."

 

"나도 그래."

 

"나도."

 

"나도야."

 

 

 

킨고의 말을 시작으로 하반 아이들의 조심스러운 반대표가 던져지자 쇼자에몽은 입맛을 다셨다. 그냥 패션쇼라고 하면 귀신 분장을 꼭 해보는 건데, 닌자의 패션쇼인게 문제가 된다고 할까나. 하치야 선배에게 최근 변장술을 배우고 있는 터라 여우가면을 꼭 써보고 싶었지만, 신베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쇼자에몽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ㅁㅡ"

 

"그렇다면 우리 거지 분장 해보는건 어때!!!!!!!!"

 

 

 

 

 

 

거지 분장?

 

쇼자에몽을 포함한 하반 아이들의 당혹스러운 눈이 손을 번쩍 쳐들고 일어선 키리마루를 향했다. 키리마루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예의 그 송곳니를 드러내고 씩 웃고 있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그 눈빛에 하반 아이들은 반자동 반사적인 키리마루 발령 주의보가 머릿속에서 작동되는 것을 느꼈다.

 

 

 

 

"거, 거지 분장이라면 어떤..."

 

"후후후, 내 사복처럼 이렇게 옷을 기워 입는 거야!"

 

 

 

키리마루는 자신있게 어깨가 기워진 자신의 사복을 내밀었다. (언급하지 않았지만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방은 란타로와 키리마루, 신베의 방이었다. 평소에 회의를 진행하는 쇼자에몽의 방이 이스케의 부모님이 보내 주신 염색 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키리마루의 옷을 살펴보던 산지로와 토라와카, 란타로와 키산타는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그러나 잠시 팽팽 돌아가던 쇼자에몽의 머릿속에 순간 스치고 지나간 '거지 분장' 의 커다란 결함에 대하여 쇼자에몽이 입을 열려 했으나ㅡ

 

 

 

 

"옷을 기워 입으면!"

 

"저절로 옷 색깔이 많아져서!"

 

"저, 저기 얘들아ㅡ"

 

"화려해질 거야!!"

 

"그럼 눈에 띄겠지!!"

 

"있잖아 좋긴 한데ㅡ"

 

"하지만 거지한테는!!!"

 

"그게ㅡ"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을 테니까!!!"

 

"잠깐 내 말좀 들어봐ㅡ"

 

"눈에 안 띄게 되는 거지!!!!"

 

 

 

 

 

 

이얏호, 하며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하반 아이들을 바라보며 쇼자에몽은 이마를 짚었다. 바느질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산지로와 헤이다유에 이어서 부모님께서 그렇잖아도 염색한 천을 많이 보내주셨다며 흥분하는 이스케, 그리고 그럼 돈까지 아낄 수 있는 거네에?! 하며 동전동공을 만드는 키리마루를 보니 쇼자에몽은 덴시치와 사키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지는 것만 같았다.

 

 

 

 

그니까, 하반이 거지 분장을 하겠다는 얘길 들으면 이반 애들이 우릴 무시할지도 모른다구....

 

 

다른 아이들이 하도 들떠 있었는지라, 쇼자에몽은 눈물을 머금고 오케이 싸인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아까 자신의 손을 잡고 하반이 무시당하는 게 싫다고 말했던 주제에 덩달아 들떠 있는 단조를 보자 왠지 심경이 꿀꿀해지는 듯했다.

 

 

 

 

 

 

 

 

* * * * *

 

 

 

 

"히코시로오ㅡ"

 

"아, 쇼자에몽. 왔어? 어서 앉아!"

 

 

 

 

 

쇼자에몽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얼굴로 히코시로의 방을 찾아왔다. 히코시로는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그 옆에 깔린 방석 위로 쇼자에몽은 엎어졌다. 반쯤 감긴 눈으로 뺨을 방석에 대고 있는 쇼자에몽을 보며 히코시로가 물었다.

 

 

 

"하반은 회의 끝났어?"

 

"엉. 끝났어."

 

"뭐 하기로 했는데?"

 

"거지."

 

"엥?"

 

"거지 분장 하기로 했어."

 

 

 

 

쇼자에몽은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히코시로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쇼자에몽을 바라보다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거지 분장? 거지 분장이란 말이야? 푸하하하하!!!!"

 

 

- 무시당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히코시로한테까지 무시당하다니 기분 최악이야.

 

쇼자에몽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웃지 마, 히코시로. 그러는 이반은 뭘 하기로 했는지 말해."

 

"푸하하, 하하하하, 이것도 우연의 일치려나? 이반은 '착한 아이들' 을 하려고 했거든! 거지한테 적선을 한다거나ㅡ"

 

"....거지한테 적선?!"

 

"그래!!! 그럼 하반이 거지 분장해서 동냥하고 이반이 적선하면 되겠다!!! 학년별로 해도 좋은 점수 나올 거야!!!"

 

"..............................ㅠ"

 

 

 

 

 

 

 

 

 

 

 

 

 

 

 

 

 

 

 

 

 

밖에서 쇼자에몽과 히코시로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단조는 어깨를 한번 들썩였다가 하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기숙사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쇼자에몽을 대표로 웃음거리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왕에 할 거면 목숨 걸고!!! 6학년 선배들보다도 멋지게!!!! 해보자고 기를 돋울 참이었다.

 

 

- 체, 적선하는 역할보단 거지 역할이 훨씬 더 재밌거든요.

 

 

 

 

 

 

 

 




- 지난 줄거리

 [패션소의 시작의 단] , [5학년의 전원집한의 단] 에서 이어짐

 

 

 - 몬센

 - 단쇼

 

 

 

 

 

 

 

 

 

[회계위원회 & 학급위원회 + α]

패션쇼 예산회의의 단

 

by. 카루린다카렌

 

 

 

 

 

 

 

 

 

토메사부로가 식당에 붙여놓은 공고 ㅡ 닌술학원 최대의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학년경기/반별팀, 전원 필참!!!!!! ㅡ 로 인해 닌술학원은 하루 종일 패션쇼 이야기 + 원장선생님의 뒷담화로 시끌벅적했다. 학원 전체뿐 아니라 효우고 수군의 다이상 쿄우에이마루까지 패션쇼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며 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원장선생님이 평가하겠다던 6학년의 정보전달 능력은 사실상 평가의 의미가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6학년보다는 소문을 전달한 코마츠다와 1학년 하반의 전공이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하겠지만, 일단 공고는 토메사부로의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몬지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고로."

 

 

 

 

 

 

 

패션쇼를 한다는 이야기가 닌술학원을 한 바퀴 돌아가면서 한 차례의 요란한 소동이 지나간 후였다.

 

6학년 이반 시오에 몬지로와 4학년 로반 타무라 미키에몬, 3학년 로반 칸자키 사몬과 1학년 이반 닌교 사키치 그리고 1학년 하반 카토 단조는 회계위원회 위원회실에 모여 살벌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원장 선생님이 공고하기를 이번 패션쇼 진행에 관한 모든 재무적인 부분은 회계위원회가 주관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아! 깜빡 잊었군. 날짜는 다음주 토요일! 오늘이 화요일이니까, 일주일 정도 주면 충분하겠지?" 라고 원장선생님은 덧붙였다.)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했던 몬지로는 패션쇼 예산에 관한 논의를 하기 위해 위원회를 소집했다가 퍼뜩 굉장히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ㅡ

 

 

 

 

 

 

 

"디자인 진행중인 저희 4학년이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가야 합니다, 시오에 선배!!!!!!!"

 

"아니에요!!! 3학년은 4학년보다 인원이 많으니 예산을 더 주셔야 합니다 시오에 선배!!!!!"

 

"인원으로 따지면 1학년이 최고라구요!!!! 게다가 저흰 키리마루도 있단 말이에요!!!!"

 

"평소엔 하반 애들이 하는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단조 말이 맞아요 시오에 선배!!!!"

 

 

 

 

 

 

 

 

 

 

 

 

 

 

 

이 대회가 학년별이라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너무하세요 타무라 선배!!!! 4학년은 갖고 있는 옷도 많잖아요!!!!"

 

"너네 말마따나 3학년이 우리보다 사람이 많으니까 옷은 너네가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리고 옷이야 리폼하면 되지!!!!"

 

"리폼이라면 이미 4학년에 타카마루 선배 있는걸로 게임 끝입니다만????"

 

"아 참,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인원수로 따져야 된다니까요?"

 

"맞아요!!! 세 볼까요? 6학년 여섯, 5학년 다섯, 4학년 다섯, 3학년 여섯, 2학년 넷, 1학년 33명!!!!!"

 

"시오에 선배 솔직히 이건 고려 해주셔야 한다니까요ㅡ"

 

 

 

 

 

몬지로는 골을 싸맸다. 그냥 알아서 회계위 고문인 안도 선생님한테 맡겨버릴 것을 괜히 '회계위원'회를 소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차라리 처음부터 망할 위원회별로 게임을 하던가... 마음 같아서는 그냥 1:1:1:1:1:1로 편하게 나눠서 회의 끝내버리고 (십중팔구 안도 선생님이었다면 그랬을 것이었다.) 센조에게 빗질이나 해 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 나름의 학년 대표(...) 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4학년은 벌써 타카마루의 감독 하에 진행되고 있는 옷 디자인이 있었고, 3학년은 방향치들 때문에 옷 보존 자체가 힘들 것이 뻔했다. 5학년과 2학년의 의견은 아예 듣지도 못한 상태였고, 1학년은 다른 학년과 똑같은 규칙을 적용하려니 그 수가 심각하게 많았다. 그렇다고 6학년의 예산을 깎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벼이삭 익은 날 짹짹대는 참새들마냥 입방아를 찧어대는 회계위원들을 한참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던 몬지로는 10kg 주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에라 모르겠다.

 

 

 

 

 

 

 

 

 

"알았으니까 조ㅇ....!!!!!!"

 

"시오에 선배!!!!"

 

 

 

 

 

순간 위원회실의 문이 큰 소리와 함께 덜컥 열리며 쨍한 햇빛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몬지로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 그 사이로 나타난 것이 5학년 하치야 사부로와 오하마 칸에몽, 그리고 1학년 이반 이마후쿠 히코시로와 1학년 하반 쿠로키 쇼자에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급위원회가 여긴 왜...?"

 

"보아하니 회계위원회에서 이번 패션쇼 예산을 관리하라는 원장선생님의 공고가 있었다던데, 공정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지요."

 

"는 훼이크고 사실은 회계위원회에 5학년이 없는 게 걱정되서 온 거지, 칸에몽? 사부로도."

 

 

 

 

 

몬지로가 받아치자 칸에몽은 그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꺅,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칸에몽을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밀치며 사부로가 하하 웃었다. 몬지로는 콧잔등을 찌푸린 채 실눈을 떠 보였다.

 

 

 

 

 

"하하, 선배도 차암, 저희 학급위원회는 그런 게 아니ㅡ"

 

"시오에 선배!!!!! 1학년에게 예산을 더 많이 주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쇼자에몽 말이 맞습니다!!!!!!"

 

 

 

 

 

 

 

댐잇. 다짜고짜 몬지로 앞에 꿇어앉고 나선 쇼자에몽과 히코시로를 보자 사부로는 뭐 씹은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티내지 말라고 말했건만....!!!!! 너희들은 그렇게 단조와 사키치를 못 믿는 거냐!!!! 그 와중에 단조는 꿇어앉기를 가까이 앉은 쇼자에몽에게 몸을 숙여 귀에 대고 뭔가를 속닥이고 있었다. 사부로는 어색하게 하하하하 웃어 보였다.

 

 

 

"호오... 이래도 예산감독이라고 할 셈인가, 5학년 학급위원장?"

 

 

사부로와 칸에몽은 재빨리 눈빛을 주고받았다.

 

 

 

 

 

 

 

"시오에 몬지로 회계위원장!!!! 5학년의 패션쇼에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5학년이 진행할 프로젝트가 상당한 금액을 요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도와주십쇼!!!!!"

 

 

 

 

히코시로와 쇼자에몽 뒤에서 칸에몽과 사부로도 씩씩하게 꿇어앉았다. 미키에몬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선배님들 이러시면 안 된다고 외쳐 보았지만 이미 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절절하게 예산을 갈구했다. (사실 사부로가 절절했고 칸에몽은 동그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몬지로를 똑바로 쳐다보고 안광을 발사하고 있었다.) 몬지로는 이마를 짚었다. 정말 진심으로 1:1:1:1:1:1로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 와중에 쇼자에몽과 히코시로가 서로 1학년이 예산을 더 많이 받아야 되는 이유에 대해 설파하고 있었고, 사몬이 질세라 자신이 이제까지 길을 잃어버려서 못 쓰게 된 옷이 몇 벌인지를 어필하고 있었다. (대체 어째서...) 게다가 야무지게 제 할 말을 하는 중인 쇼자에몽의 손을 단조가 울망울망한 눈을 한 채 꼭 잡고 있는 것을 보니 열불의 온도가 2˚C쯤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오에 선배 계십니까?"

 

"시오에 선배 저랑 얘기 좀 부탁드립니다!!"

 

"시오에 선배 잠깐만요!"

 

"시오에 선배!!!"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회의실의 문이 다시 열리며 몇몇 사람들이 시끌벅적한 방 안으로 들어오자, 몬지로는 그 면면을 보고 마른 세수를 하며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4학년 이반 타이라노 타키야샤마루는 (드물게 그를 반기는) 미키에몬의 곁으로 달려가 쉴 새 없이 디자인을 하면서 나온 예산값에 대해 떠들어 댔고, 5학년 이반 쿠쿠치 헤이스케는 2학년 이반 이케다 사부로지와 함께 '5학년과 2학년에게 예산편성을 적절하게 해주지 않을 시 화약위원회가 소홀해질지 모르는 임무 목록' 을 들고 나타나 사부로와 칸에몽의 포옹을 받았다. 뒤따라 들어온 3학년 로반 토마츠 사쿠베는 우는 소리를 내는 사몬과 합류하여 목청껏 '3학년생 예산호소' 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몬지로는 드디어 이마에 설 수 있는 핏줄의 개수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다들 닥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몬지ㄹ.."

 

 

 

 

 

 

 

시원하게 내지르며 10kg 주판을 집어던진 몬지로는 순간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얼음이 되어버린 방 안의 눈은 모두 회의실 문을 향해 있었다. 문가에는 6학년 이반 타치바나 센조가 얼굴을 10kg 주판으로 가린 채 서 있었다. 몬지로의 머릿속에서 3만 6천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주판은 서서히 센조의 얼굴에서 떨어졌고 센조는 주판알 자국이 난 채 웃으며 몬지로를 바라보았다. 몬지로는 비로소 왜 토메사부로가 쵸지보다 센조를 무서워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몬지로.....? 이건 무슨 환영인사냐.....?"

 

"ㅅ......ㅅ.......센조. 저기, 저 이건 말이야. 이건......"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들어나 볼까....?^^"

 

"이, 이건, 그래, 그래 그게, 말이야, 지금, 패션쇼 예산회의를 하다가, 그게, 그게 말이야..."

 

"호오, 예산회의? 어떻게 진행되고 있길래?"

 

"아하, 아, 그게, 지금, 당장 그게, 그 학년별로 예산을 어떻게 짤지, 에 관해서 말이야, 그게...."

 

"아..? 그것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좁아터진 회계위원회 회의실에 몰려 있었단 말이야..?"

 

"하하하하하하. 센조. 의무실에 가 보는 건 어떨까?"

 

"아니. 마침 너한테 6학년 예산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러 오던 참이었거든. 여기서 얘기 끝내지. 안 봐도 다들 자기 학년 예산 올려달라고 몬지로 찾아온 걸 텐데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 주겠어. 모두 1:1:1:1:1로 하되 1학년은 사람이 많으니 5로 하자고. 어때?"

 

".........엄........타치바나 선배............"

 

"하나 더. 우리 6학년은 주최학년이니 1을 더 받아가겠어. 이건 학년별 대회 전통이야. 작법이기도 하고."

 

"선ㅂ....."

 

"토 달면 깎는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센조는 싱긋 웃으며 정리 됐지? 이만ㅡ 하고 그대로 뒷걸음질쳐 문을 닫았다. 몬지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ㅈ.....저대로 공표하겠다."

 

"하, 하지만 시오에 선배...!!!!"

 

"토 달면 깎는다."

 

 

 

 

 

 

몬지로의 의사봉이 땅땅땅 세 번 울려퍼지자 1학년을 제외한 학년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울려퍼졌다.

 

 

 

 

 

 


- 지난 스토리

   <패션쇼의 시작의 단> 에서 이어짐

 

 

- 타케쿠쿠

- 하치라이

 

 

 

 

 

 [5학년 올캐러]

5학년의 전원집합의 단

 

 

by. 카루린다카렌

 

 

 

 

 

 

 

 

 

 

 

 

6학년 기숙사 지붕을 뛰어넘은 두 형체는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한 건물의 방문 앞에 멈추어 섰다. 형체 중 하나가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두들기자 방 안에서 잔뜩 긴장한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암호는?"

 

"여우가면."

 

 

 

 

 

문이 열렸다. 라이조와 사부로는 방 안에 모여 정좌해 있는 헤이스케, 하치자에몽, 칸에몽의 진지한 얼굴을 차례로 돌아보고는 방 안으로 잽싸게 기어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사부로가 날카로운 눈으로 밖을 한 번 흘긋 쳐다보고는 기척 없이 문을 닫았다. 방문 밖 마루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했다.

 

 

 

 

 

"정보는?"

 

 

사부로와 라이조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헤이스케의 물음이 떨어졌다. 사부로는 입을 가렸던 두건을 풀며 대답했다. 

 

 

"라이조가 말한 대로야. 원장선생님이 또 무슨 일을 꾸미신 게 틀림없어."

 

"6학년 위원장을 두고 있으면 이럴 때 편리하군."

 

 

 

칸에몽은 알사탕을 물고 있어 볼록한 볼을 톡톡 만지작거렸다. 흔들거리는 호롱불의 심지를 돋우며 라이조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패션쇼를 하는 것 같아."

 

"패션쇼? 우리 오리엔테이션 때 했던 거?"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뭔가가 필요해. 타치바나 선배가 말씀하시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눈에 띄되 눈에 안 띄어야 한댔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너네 선배들한테 안 들켰냐? 대단하다."

 

 

 

 

라이조는 고개를 으쓱하며 다시 이었다.

 

 

 

"나도 몰라. 어쨌든 이번 대회는 학년경기고, 팀은 반별이라는 것까지 알아 왔어."

 

"위원회별도 아니고 학년별이면서 반별이라고??"

 

"그래. 헤이스케랑 칸에몽이 같은 팀이 되고, 너랑 나랑 사부로가 같은 팀이 되는 거지."

 

"근데 어떻게 학년경기를 해?"

 

"준비는 팀 단위로 하되 성적은 학년으로 매기겠다 이럴 모양이야."

 

"그래서 선배들은 무슨 부부 컨셉으로 간다 어쩐다 하시던데."

 

 

 

사부로가 뒤이어 설명하자 헤이스케의 표정이 마치 길 가다 마키노스케 만난 것마냥 변했다. 부부 컨셉 할 생각이거들랑 두부지옥을 맛보여 주겠다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헤이스케에게 칸에몽은 안심하라는 듯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런 헤이스케와 칸에몽을 골똘히 바라보던 하치자에몽이 사부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날짜가 언젠지는 알아?"

 

 

사부로는 고개를 저었다. 원장 선생님의 생각이니까 당장 다음 주에라도 시행하지 않을까, 하는 칸에몽의 대답에 모두들 짧은 신음 소리를 내었다. 위원회 경기라면 몰라도 학년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이번에는 꽤나 중요한 문제였다. 항상 6학년의 캐릭터 파워에 치이고 4학년의 아이돌 파워에 치여서 5학년은 순둥이들 같다는 평을 듣는 터였다. 쿠쿠치 선배의 무기는 두부야? 라고 이스케에게 묻던 타카마루를 떠올리자 헤이스케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헤이스케는 바닥을 탁 쳤다.

 

 

"이번 대회에서는 반드시 우리 5학년이 6학년을 이기고 우승해야 해! 그러니까 지금 당장 방으로 돌아가서 자기 팀하고 얘기 나누고 아침시간에 다시 모여서 회의하자. 동의?"

 

"좋아." / "그래." / "동의." / "찬성."

 

 

모두의 동의가 이어지고 다섯은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사부로와 라이조가 방으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하치자에몽은 눈에 띄지 않게 헤이스케의 손을 잡고서 눈짓을 해 보였다. 헤이스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치자에몽의 어깨를 툭툭 쳤다. 곧 5학년 로반의 세 명은 문을 열고서 스윽 빠져나가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칸에몽."

 

"왜?"

 

"여장이나 부부 같은 것만 빼고 생각하자."

 

"선배들이 하니까?"

 

"아니. 타케야가 싫어해."

 

 

 

 

 

 

 

* * * * *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묘시가 되자마자 헤이스케와 칸에몽의 방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던 5학년 다섯은 헤무헤무가 치는 종 소리에 문을 열었다. 우라산 너머로 부옇게 햇빛이 새어나며 아침을 열고 있었다. 그때 5학년 기숙사 앞으로 코헤이타와 몬지로가 슥 나타났다. 갑작스런 선배들의 등장에 5학년들은 다소 당황한 얼굴을 해 보였다. 선배 둘은 실눈을 뜬 채 직속 후배들을 훑어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ㅁ...뭐....뭡니까? 시오에 선배, 나나마츠 선배?"

 

"아니야. 사소한 건 신경쓰지 마!!"

 

"그, 그래도 선배들이 갑자기 나타나시면 무섭단 말이에요;;"

 

"왜?? 아아, 니들 패션쇼 회의 하는구나?"

 

 

 

 

 

히이이이이익.

사부로와 라이조가 서로 마주보며 응가 마려운 강아지처럼 쩔쩔맸다. 코헤이타는 호탕하게 웃었다.

 

 

 

"선배들이 그거 하나 눈치 못 챌 것 같냐!!!! 뭐 알아서는 안 되는 걸 안 것도 아니고, 알았으면 준비 잘해 봐라."

 

"정보 캐낸 건 칭찬해 줄 일이지 혼낼 일이 아니야. 혼나야 될 건 우리 중에 목소리가 제일 컸던 용구위원장 놈이지."

 

 

 

몬지로가 덧붙이며 씽긋 미소짓자 5학년들은 겨우 안도했다. 사실, 저 단련바보 회계위원장이 자신의 말을 누군가가 엿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면 기합을 받고도 남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사부로는 웃으며 라이조의 머리를 헝클었다. 정전기가 일었다.

 

 

 

"그럼 우리들은 다들 밥 먹으러 올 시간에 패션쇼 공지를 할 생각이니까, 너희들도 늦지 말고 와라."

 

"예! 시오에 선배, 나나마츠 선배!"

 

 

 

 

몬지로와 코헤이타가 사라지자 5학년 다섯 사람은 한숨을 푹 쉬었다.

 

 

 

 

"하. 진짜 간 떨어질 뻔했네. 6학년 선배들은 솔직히 5학년이 됐어도 무섭다니까."

 

"오죽하겠냐."

 

"후.....그래서 본론으로 돌아보면, 우리는 뭘 하기로 결정한 거야?"

 

"칸에몽 아이디어로 하자. 그게 진짜 괜찮은 것 같아."

 

"팀전이니까 팀별로 변장해도 괜찮은 거 맞겠지?"

 

"그렇겠지."

 

 

 

 

 

그때 닌술학원을 뒤흔들 만한 거대한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5인은 깜짝 놀라 고함에 귀를 기울였다. 두 개의 목소리가 섞여 있는데 하나는 몬지로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토메사부로의 것이었다. 누가 니 맘대로 식당 정문에 포스터를 써서 붙이랬냐 토메사부로!!!!!! 그럼 네놈은 오는 애들마다 일일이 붙들고 말할 생각이었냐!!!!!!! 한 사람한테 전하면 정보 전달 과정도 볼 수가 있잖아!!!!!!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해!!!!!! 아침부터 정말 민폐 아닌 민폐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뢰와 같은 보록화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필경 저 둘의 고함을 참다 못한 타치바나 선배의 행각이리라 짐작한 5학년 다섯 사람은 보건위원장인 젠포우지 선배만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 케마이사

- 몬센

 

 

 

 

 

 

 

 

 

 

 

 

 

[6학년 올캐러]

패션쇼의 시작의 단

 

by. 카루린다카렌

 

 

 

 

 

 

 

 "이사쿠군, 가서 몬지로군 불러와."

 

 

 

6학년들은- 아니 몬지로를 제외한 6학년들은 모두 원장실 안에서 원장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일렬 횡대로 앉아 있었다. 좌측에는 야마다 선생님과 도이 선생님이 정좌해 있었는데, 또 원장 선생님이 뭔가 생각한 것이 있어서 불러모은 듯했다. 이사쿠가 얼결에 네, 하며 일어서자 토메사부로는 함께 다녀오겠다며 덩달아 일어났다. 너는 앉아 있으라는 원장선생님의 말에 토메사부로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지만, 시선은 문을 열고 나가는 이사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문이 닫히는 동시에 토메사부로는 속이 메슥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콰당.악!!!!!!!! 요란한 비명소리가 문 밖에서 울렸고 도이 선생님이 황급히 일어나 나갔다. 그러니까 같이 다녀오겠다고 했잖아요, 하아.

 

 

 

한참 뒤 문이 열리더니 잔뜩 기합이 들어간 표정의 몬지로가 나타났고, 뒤이어 도이 선생님이 이사쿠를 끌고 들어왔다. 토메사부로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오른쪽 손바닥이 까진 이사쿠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이사쿠는 쑥쓰러운 듯이 하하, 하고 조그맣게 웃어 보이고는 그 왼쪽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토메사부로가 상처입은 이사쿠의 오른손을 확 잡아당기는 바람에 이사쿠는 균형을 잃고 토메사부로 쪽으로 넘어졌다. 얼떨결에 이사쿠를 기대 안은 토메사부로는 당황하며 이사쿠의 손을 놓았다.

 

그때 원장이 헛기침을 했다. 6학년 전원의 허리가 곧게 펴졌다.

 

 

 

 

"그래, 다 모였군. 자...... 그래서 너희 6학년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은 이유는."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패션쇼를 열기 위해서다."

 

 

 

 

 

 

 

 

 

 

 

네?

 

쵸지가 나지막하게 침묵을 깼다.

 

 

 

 

"ㅍ....패션쇼라뇨.....원장 선생님.....?"

 

"말 그대로의 패션쇼다!!!! 가장 화려하게 꾸미고 나온 사람에게 1등 상품을 수여하겠다!!!!!"

 

 

 

센조가 어색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화려함이란 것은 닌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닙니까? 닌자란 자고로 눈에 띄지 말아야ㅡ"

 

"바로 그거다, 6학년 이반 타치바나 센조! 닌자란 자고로 눈에 띄지 말아야 하는 것. 때문에 숨어야 할 때 화려하게 입고 있으면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닌자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테지! 이것이 바로 역을 찌르는 역공법이다!"

 

 

6학년들은 전부 눈썹을 일자로 만들어 보였다.

 

ㅡ 아.

     그러셔요?

 

 

 

"... 그것만 있는 게 아냐. 누가 가장 빨리 닌자복에서 패션쇼 옷으로 갈아입는지도 볼 거다. 이것도 중요해!!!!!"

 

 

 

이사쿠와 토메사부로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확실히, 그건 중요했다.

머리를 긁적이던 몬지로는 한숨을 한번 푹 내쉬더니 입을 떼었다.

 

 

"대회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저번처럼 위원회별로, 아니면 학년별-"

 

"학년끼리 하되 같은 반을 팀으로 진행한다."

 

 

6학년 전원의 입에서 으억?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제나 대회는 같은 학년 혹은 위원회끼리 진행했기에, 같은 반으로 진행하는 교내대회는 상당히 드물었다. 토메사부로는 인상을 쓰며 이사쿠를 돌아보았다. 이사쿠는 어깨를 으쓱였다.

 

 

 

"성적은 학년으로 낼 것이지만 준비는 반을 팀으로 해서 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패션쇼 성적은 학년별로 매겨지지만 준비는 팀별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준비하더라도 같은 학년 다른 팀이 어떻게 진행하는지 상세하게 알아둬야 한다. 6학년만 불러서 이야기하는 건 이 일이 얼마나 빨리 교내에 퍼지느냐를 통해 6학년의 정보전달 능력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알겠나, 제군들?"

 

"......네에."

 

 

언제 그렇게 생각을 해 두었는지 원장 선생님의 입에서는 멈추지도 않고 술술 계획이 흘러나왔다. 6학년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겨우 입술을 우물거리며 대답을 했다. 야마다 선생님과 도이 선생님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 해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

 

 

 

 

원장실에서 나온 6학년들은 6학년 기숙사 건물을 향해 걸으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아ㅡ 나는 패션쇼 같은 건 딱 취미가 아닌데 말야."

 

"나도 그래. 난 운동회가 더 좋다고."

 

 

코헤이타의 말을 몬지로가 받았다. 몬지로는 뭔가 심기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패션쇼라니, 오리엔테이션 때처럼 서양 복장이라도 해야 하느냔 말이야."

 

"그거 괜찮은데? 귀족 부인 옷은 어때?"

 

"....센조. 너랑 내가 같은 팀이라는 걸 기억해라."

 

"걱정 마,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치마는 입지 않을 테니까."

 

"야! 센조! 그게 무슨 소리야, 넌 당연히 여장을 해야지!"

 

"....죽고 싶냐, 토메사부로."

 

"........중얼중얼......."

 

"응? 쵸지 뭐라고?"

 

"여장을 해도 괜찮은 건가."

 

"엑!!!! 설마 쵸지 너 여장할 거냐!!!! 그럼 난 어떡하라고!!!!!!"

 

"이참에 딱 부부 컨셉이면 어때. 이반은 센조가 여장하고 로반은 쵸지가 여장하고 우리 반은 이사쿠가 여장해 주면 되겠네."

 

 

 

 

토메사부로가 이사쿠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씩 웃자 몬지로가 얼굴이 붉어진 채 말을 더듬으며 맞받았다.

 

 

"부, 부, 부부라니!!!!! 이건 컨셉쇼가 아니라 패션쇼다, 용구위원장!!!"

 

"누가 뭐래, 여장해도 괜찮으면 그렇게 해도 좋겠단 얘기잖아? 그리고 기억해야 되는게 점수는 학년별로 받는다고! 마침 우리는 서로 둘둘둘이니까 이렇게 하면 시너지 효과도 나고 좋지 않겠냐 이거지!!"

 

".......으..........."

 

"그건 토메사부로 말이 일리가 있긴 해."

 

"코헤이타 너까지....!!"

 

"뭐야 그래서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아까 센조 넌 치마는 안 입겠다며?"

 

"쟤 말 들어보니까 그것도 그럴 듯해서 그런다. 부부 컨셉이면 사람 속에 섞여있어도 눈에 띄면서 눈에 안 띄고 좋겠네. 물론 여장하는 쪽이 반드시 나라고 생각하지는 마, 몬지로."

 

"세엔조오......"

 

 

 

 

 

어느 새 기숙사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6학년들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동시에 한숨을 파아 하고 내쉬었다. 부부 컨셉이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고 있는 스스로들이 꽤나 바보같이 느껴졌다. 벌써 밤이었으므로 하급생들은 아마 지금쯤 씻고 이미 이불을 폈을 것이었다. 이 소식을 닌자학원 전체에 알리는 것은 일단 다음날 아침식사 시간에 하기로 하고, 6학년들은 일단 각자의 방에서 팀원과 이야기를 나눈 후 다음날 기상하자마자 몬지로와 센조의 방에 모여서 회의를 하기로 하였다. 저마다 방으로 들어가며 서로에게 굿나잇 인사를 보냈다.

 

토메사부로는 이사쿠가 들어오도록 문을 잡고 있다가 닫았다. 이사쿠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으어ㅡ하는 소리를 내더니 풀썩 쓰러졌다. 토메사부로는 씩 웃으며 으아! 하고 기합을 지르고는 이사쿠의 몸 위로 엎드려 쓰러졌다.

 

 

 

"....장난기가 너무 많아, 토메사부로는."

 

"내가 뭘?"

 

"여장해서 부부라니... 그냥 토메가 하고 싶었던 거 아냐?"

 

"그런 마음 반....진심 반.....?"

 

"하아, 큰일이네. 난 여장 잘 못하는데다... 내 불운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해ㅜ.ㅜ"

 

"쿠노이치랑 타카마루 씨한테 좀 해달라고 하면 되지 뭐. 아, 4학년이라 좀 그러려나."

 

"....역시 그냥 평상복 입는 건 어때?"

 

"싫어, 평범하잖아. 6학년은 모든 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고. 위원회 대회였다면 용구위원회가."

 

"못 말려."

 

"하, 이사쿠.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응?"

 

 

 

토메사부로는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책상에 켜져 있는 등잔불을 훅 불어 껐다. 잠깐, 아직 이불도 안 폈......!!!! 이사쿠의 목소리는 이내 토메사부로의 그르렁거리는 소리에 먹히고 말았다.

 

 

 

 

 

 

* * * * *

 

 

"좋아. 정보 수집 완료, 가서 애들한테 알려."

 

 

 

 

 

6학년 기숙사의 담장을 뛰어넘는 두 형체가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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